지증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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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증왕(智證王, 437~514, 재위 500~514)은 신라의 제22대 왕으로, 나라 이름을 '신라', 임금의 칭호를 '왕'으로 정하고 우경을 장려했으며, 512년 이사부를 보내 우산국(울릉도)을 복속시켰다.

이름은 지대로 또는 지도로이며, 내물왕의 증손이다. 6촌 형인 소지 마립간이 아들 없이 죽자 64세에 왕위에 올랐다. 즉위 초의 칭호는 마립간이었고, 포항 냉수리 신라비(503)에는 '지도로 갈문왕'으로 나온다. 죽은 뒤 '지증'이라는 시호를 받았는데, 신라에서 시호를 쓴 첫 왕으로 본다.[1]
- 순장 금지와 우경 - 502년 왕이 죽으면 사람을 함께 묻던 순장을 금했고, 같은 해 주·군의 관리에게 농사를 권하게 하면서 처음으로 소로 밭을 갈게 했다. 노동력을 지키고 농업 생산을 늘리려는 조치로 본다.
- 국호와 왕호 - 503년 사라·사로·신라 등으로 섞여 쓰던 나라 이름을 신라로 정하고, 마립간 대신 중국식 칭호인 왕을 썼다. '신라'는 "덕업이 날로 새로워지고 사방을 망라한다"는 뜻으로 풀이했다.[1]
- 지방 제도 - 505년 주·군·현을 정하고 실직주(삼척)를 두어 이사부를 첫 군주로 삼았다. 514년에는 아시촌에 소경을 두었다.
- 동시 - 509년 수도에 시장인 동시를 열었다. 『삼국사기』 신라본기는 이를 지증왕 10년(509) 정월의 일로 적었으나, 같은 책 직관지는 시장을 감독하는 동시전을 지증왕 9년(508)에 두었다고 적어 한 해 차이가 난다.[2]
- 상복법 - 504년 상복 입는 법을 정했다.
우산국은 지금의 울릉도에 있던 작은 나라이다. 『삼국사기』 신라본기는 512년 6월 우산국이 항복해 해마다 토산물을 바쳤다고 적었다.[3] 같은 책 이사부 열전은 하슬라주 군주 이사부가 사람들이 사납다는 말을 듣고 나무로 사자 모양을 만들어 배에 싣고 가서 "항복하지 않으면 이 맹수를 풀어 놓겠다"고 위협해 항복을 받았다고 전한다.
- ↑ 1.0 1.1 지증왕,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6-10-19 확인.
- ↑ 『삼국사기』 권4 신라본기 지증마립간 10년(509) 정월, 서울에 동시를 설치하다, 한국사데이터베이스, 국사편찬위원회, 2026-10-19 확인.
- ↑ 『삼국사기』 권4 신라본기 지증마립간 13년(512) 6월, 이사부가 우산국을 정벌하다, 한국사데이터베이스, 국사편찬위원회, 2026-10-19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