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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치 전투(梨峙戰鬪, 1592)는 임진왜란 초기인 1592년(선조 25) 7월 8일 권율과 황진이 이끈 조선군이 금산에서 전주로 넘어가는 고개 이치(배재)에서 일본군을 물리쳐 전라도 진출을 막은 싸움이다.

1592년 여름 금산을 차지한 일본군 고바야카와 다카카게의 부대는 곡창 지대인 전라도의 중심 전주를 노리고 두 갈래로 고개를 넘으려 했다. 한 갈래는 웅치(곰티), 다른 한 갈래는 이치였다. 이치는 지금의 충청남도 금산군 진산면과 전라북도 완주군 사이, 대둔산 자락을 넘는 길목이다.[1]

광주 목사(전라도 절제사) 권율은 동복 현감 황진과 함께 관군 1,500여 명을 이끌고 이치를 지켰다. 일본군이 벼랑을 타고 기어오르자 황진이 나무에 몸을 기대 총탄을 피하며 활을 쏘았고, 싸움은 하루 종일 이어졌다. 황진이 탄환에 맞아 군사들의 기세가 꺾이자 권율이 장수와 군사를 다그쳐 끝내 일본군을 물리쳤다. 『선조수정실록』은 일본군이 조선에서 치른 세 큰 싸움 가운데 이치를 첫째로 꼽았다고 적었다.[2]

  • 전라도 보전 - 같은 무렵 웅치에서는 김제 군수 정담 등이 전사하며 일본군을 막다 밀렸고, 금산성을 친 고경명의 의병도 패했다. 그러나 이치에서 막히자 일본군은 전라도 침입을 단념했다.[3] 전라도는 이후 전쟁 내내 군량과 병력을 대는 뒷받침이 되었다.[1]
  • 권율의 성장 - 이 싸움으로 이름을 떨친 권율은 이듬해 행주산성에서 다시 크게 이겼다.
  • 유적 - 싸움터는 충청남도 기념물 '금산 이치대첩지'와 전라북도 기념물 '이치전적지'로 나뉘어 지정되었다. 두 지정 설명은 이 싸움을 임진왜란 육전의 첫 큰 승리로 소개한다.[4]

『선조수정실록』은 이 기사의 제목을 '권율이 웅치에서 물리치다'로 달고 웅치와 이치 두 싸움을 한 기사에 묶었다. 실제로 웅치는 정담·이복남 등이, 이치는 권율·황진이 지킨 서로 다른 고개였다.[2]

임진왜란의 육지 싸움과 구별하기

편집 원본 편집
싸움 때 이끈 사람 내용
이치 전투 1592년 7월 권율·황진 금산에서 전주로 가는 길을 막아 전라도를 지킴
북관 대첩 1592~1593년 정문부 함경도 의병이 길주 등지에서 일본군을 몰아냄
진주성 싸움(1차) 1592년 10월 김시민 진주성을 지켜 냄 (→ 진주성 전투)
행주 대첩 1593년 2월 권율 행주산성에서 일본군을 물리침
  1. ↑ 1.0 1.1 이치전투,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6-10-19 확인.
  2. ↑ 2.0 2.1 『선조수정실록』 26권, 선조 25년 7월 1일, 전라 절제사 권율이 왜적을 웅치에서 물리치다, 조선왕조실록, 국사편찬위원회, 2026-10-19 확인.
  3. ↑ 의병의 봉기, 『신편 한국사』 29 조선 중기의 외침과 그 대응, 한국사데이터베이스, 국사편찬위원회, 2026-10-19 확인.
  4. ↑ 이치전적지, 국가유산포털, 국가유산청, 2026-10-19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