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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육군 조병창(仁川陸軍造兵廠)은 일제가 중일 전쟁과 태평양 전쟁에 쓸 무기를 만들려고 1939년부터 지금의 인천광역시 부평구에 세워 1941년 문을 연 일본 육군의 무기 공장으로, 많은 한국인 노동자와 학생이 이곳에 동원되었다.

부평 일대는 일본군의 연습장으로 쓰이다가 1939년 이후 조병창(군수 공장) 부지가 되었다.[1] 1938년 국가 총동원법이 시행되어 인력과 물자를 전쟁에 쏟아붓던 민족 말살 통치 시기에, 일제가 식민지에 세운 무기 공장으로 1941년 개창했다. 부평에 본부와 제1제조소를, 평양에 평양 제조소를 두었다.[2]

  • 생산 - 주로 소총과 총검을 만들었다. 처음 생산 목표는 소총 2만 정, 경기관총 100정, 총검 2만 자루, 군도 1,000자루였다. 탄입대 같은 군용품도 만들었다.[2]
  • 노동 동원 - 건설 단계부터 각 지역 주민이 '근로 보국'이라는 구호 아래 공사장에 끌려왔다. 조병창 안에 기능자 양성소를 두어 10대 소년들을 견습공으로 길렀다. 1944년 기능자 양성소 졸업 증서를 받은 사람은 당시 16세였다.
  • 학생 동원 - 전쟁 말기에는 학도 동원 정책에 따라 학생들도 조병창 작업과 주변 지하 시설 공사에 끌려온 것으로 전한다.
  • 부평의 변화 - 조병창 건설을 전후해 일본 기업들의 공장이 부평에 들어섰고, 노동자가 몰리면서 인구가 크게 늘었다.

1945년 9월 미군이 시설을 접수해 군수 기지(애스컴 시티)로 썼고, 뒤에 주한 미군 기지 '캠프 마켓'이 되었다. 1996년 시민들의 반환 운동이 시작되어 2002년 반환이 결정되었고, 2019년 12월 일부 구역, 2023년 12월 나머지 구역이 반환되었다.[1] 부평역사박물관이 가진 조병창 관련 유물(토지 매수 안내문, 기능자 양성소 졸업 증서와 수첩, 총검, 탄입대 등 10점)은 2022년 인천광역시 등록 문화유산이 되었다.

전시 동원 정책 구별하기

편집 원본 편집
정책 때
국가 총동원법 조선 시행 1938
육군 특별 지원병제 1938
국민 징용령 1939
국민 근로 보국 협력령(근로 보국대) 1941
학도 지원병제 1943
징병제·여자 정신 근로령 1944

같은 시기 학교에서는 황국 신민 서사를 외우게 했고, 1941년 소학교 이름을 국민학교로 바꾸었다.

  1. ↑ 1.0 1.1 캠프마켓 개요, 인천광역시, 2026-10-19 확인.
  2. ↑ 2.0 2.1 부평역사실 상설 전시, 부평역사박물관, 2026-10-19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