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용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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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용영(壯勇營)은 정조가 왕권을 뒷받침하려고 국왕 호위 부대인 장용위를 키워 만든 친위 군영으로, 1793년(정조 17) 서울의 내영과 수원 화성의 외영 체제를 갖추었고 정조가 죽은 뒤 1802년(순조 2) 폐지되었다.
- 내영 - 한성부에 두었고, 지휘관은 장용사(장용영 대장)이다. 규모를 5사 25초로 늘려 계획했다.
- 외영 - 수원 화성에 두었다. 수원 유수가 장용외사와 행궁 정리사를 겸했다. 사도 세자의 무덤인 현륭원과 화성 행궁을 지키는 곳이어서 실제로는 내영보다 중시되었다. 행궁을 교대로 지키는 입방군 20초와, 유사시 인근 고을에서 와서 성을 돕는 협수군 22초로 이루어졌으며, 1798년 조선 초기의 5위 체제를 본떠 다시 편성되었다.
- 재정 - 운영비는 왕실 경비에서 나왔지만, 훈련도감·금위영·어영청·수어청 등 다른 군영의 군사와 재정을 옮겨 와 키웠다. 그만큼 5군영의 규모는 줄어, 군사권을 국왕 아래로 모으는 효과가 있었다.[2]
1800년 정조가 죽고 순조가 어린 나이로 즉위하자 정순 왕후와 노론 벽파는 정조의 정책을 뒤집었고, 장용영은 1802년 폐지되었다.
- ↑ 장용영,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6-10-18 확인.
- ↑ 2.0 2.1 장용영과 군주권 강화, 『신편 한국사』 32, 국사편찬위원회 우리역사넷, 2026-10-18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