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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장각(奎章閣)은 1776년 정조가 창덕궁 후원에 세운 왕실 도서관이자 학문 연구 기관으로, 정조의 개혁 정치를 뒷받침하는 핵심 기구가 되었다.

세조 때 양성지가 설치를 건의한 적이 있고 숙종 때도 시도가 있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정조는 즉위한 해에 역대 왕의 시문과 글씨(어제·어필)를 보관한다는 명분으로 규장각을 세웠다. 이후 승정원·홍문관·예문관이 하던 국왕 측근 기능을 흡수하고, 과거와 초계문신 교육을 주관하면서 정조의 친위 세력을 기르는 곳이 되었다. '내각'이라고도 불렀다.[1]

  • 각신 - 제학·직제학·직각·대교를 두었다. 삼사보다도 명예로운 자리로 여겨졌다.
  • 검서관 - 1779년 서얼 출신을 뽑아 앉힌 자리로, 이덕무·유득공·박제가·서이수가 처음 임명되었다.
  • 초계문신제 - 젊은 문신을 뽑아 매달 시험을 치르게 하고 상벌을 내려 재교육했다.
  • 내각일력 - 규장각의 업무 일지로, 1781년부터 기록했다. 『승정원일기』보다 자세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 출판 - 교서관을 합쳐 외각으로 삼고 새 활자를 만들어 책을 찍었다.

1782년 강화도에 왕실 의궤 등을 보관하는 외규장각을 두었다. 1866년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이 불을 지르고 의궤 등을 약탈했으며, 그 의궤는 2011년 영구 임대 형식으로 돌아왔다.

1894년 갑오개혁 때 궁내부에 소속되었다가 규장원으로 바뀌었고, 1897년 다시 규장각이 되었다. 그 장서는 오늘날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연구원이 보관하고 있다.

비슷한 기구와 구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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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징 기구
정조 때 설치, 『내각일력』, 서얼 검서관, 초계문신제 규장각
왕명 출납, 은대·후원, 『승정원일기』 승정원
대제학이 이끌며 경연을 주관, 집현전을 계승 홍문관 (→ 삼사 (조선))
세종 때 학문 연구 기관, 훈민정음 창제 지원 집현전 (→ 세종)
정조의 친위 부대 장용영 (→ 정조 (조선))
  1. ↑ 규장각,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6-10-18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