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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족산성 전투(鼎足山城 戰鬪)는 1866년(고종 3) 병인양요 때 천총 양헌수가 이끄는 조선군이 강화도 정족산성에서 프랑스군을 물리친 싸움이다.

1866년 10월 프랑스 함대가 강화부를 점령하고 문수산성 전투에서 조선군을 밀어내자, 강화도는 프랑스군의 손에 들어갔다. 순무영 천총 양헌수는 화력이 열세인 조선군이 이기려면 기습밖에 없다고 보고, 덕포에서 밤에 몰래 강화 해협을 건너 549명의 군사를 정족산성(삼랑성)에 들여보냈다. 포수들을 남문과 동문 등에 나누어 매복시켰다.[1]

  • 날짜 - 양력 1866년 11월 9일, 음력 10월 3일이다.
  • 경과 - 로즈 제독의 명을 받은 올리비에 대령이 경무장한 병력 160명 남짓을 이끌고 산성을 공격하다가 매복한 조선 포수들의 사격을 받고 물러났다.
  • 피해 - 양헌수는 당일 보고에서 적 6명을 죽였다고 했고, 이틀 뒤 보고에서는 아군 사망 1명·부상 3명, 마을 사람들이 전한 적의 사망자를 50여 명이라 했다. 백과사전은 프랑스군 사상자를 전사 6명을 포함한 60~70명, 조선군 피해를 전사 1명·부상 4명으로 적는다.[2][3]
  • 패배한 프랑스군은 곧 강화도에서 철수하면서 외규장각에 불을 지르고 의궤 등을 약탈했다.
  • 근대 무기를 갖춘 서양 군대를 조선군이 처음으로 물리친 싸움으로 평가된다.
  • 흥선 대원군은 이를 서양을 물리친 승리로 여겨 통상 수교 거부 정책을 굳혔다.
  1. ↑ 병인양요,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6-10-18 확인.
  2. ↑ 『고종실록』 3권, 고종 3년 10월 3일, 정족 산성 수성장 양헌수가 보내온 적의 동향을 보고하다, 조선왕조실록, 국사편찬위원회, 2026-10-18 확인.
  3. ↑ 『고종실록』 3권, 고종 3년 10월 5일, 정족산 수성장 양헌수가 적의 상황을 보고하다, 조선왕조실록, 국사편찬위원회, 2026-10-18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