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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규장각(外奎章閣)은 1782년(정조 6) 정조가 왕실의 의궤와 귀중한 책을 안전하게 보관하려고 강화도에 세운 규장각의 분소이다.

정조는 1776년 창덕궁에 규장각을 세운 뒤, 전란에 대비해 왕실 기록을 도성 밖에 나누어 두려고 강화 행궁에 외규장각을 지었다. 이곳에는 왕실 행사의 준비와 진행을 기록한 의궤, 그 가운데서도 왕이 보도록 정성 들여 만든 어람용 의궤가 많이 보관되었다.[1]

병인양요와 약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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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6년 병인양요 때 강화도를 점령한 프랑스군은 정족산성 전투에서 진 뒤 물러나면서 외규장각에 불을 질렀다. 이때 5,000여 권의 책이 불탔고, 의궤를 비롯한 도서 340여 권과 은괴 등이 약탈되었다. 약탈된 도서 수를 백과사전의 「외규장각의궤」 항목은 340여 권, 「병인양요」 항목은 345권으로 적고 있다.[1][2]

  • 발견 - 프랑스 국립 도서관 사서였던 박병선이 1975년 의궤를 찾아내고 1979년 그 존재를 알렸다.
  • 협상 - 1993년 프랑스 대통령이 방한하며 1권을 돌려주고 전체 반환을 약속했으나 합의는 늦어졌다.
  • 귀환(2011) - 2010년 서울 G20 정상 회의에서 5년마다 갱신하는 대여 방식에 합의했고, 2011년 4월부터 5월까지 의궤가 돌아와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되었다. 소유권은 여전히 프랑스에 있다.
  1. ↑ 1.0 1.1 외규장각의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6-10-18 확인.
  2. ↑ 의궤, 우리역사넷, 국사편찬위원회, 2026-10-18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