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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비록(懲毖錄)은 조선 선조 때 영의정을 지낸 유성룡이 벼슬에서 물러난 뒤 1592년부터 1598년까지 임진왜란의 원인과 경과를 돌아보며 쓴 기록이다.

1695년 일본 교토에서 간행된 『징비록』

제목은 『시경』의 "내가 지난 잘못을 징계하여 뒤의 근심을 삼간다(予其懲而毖後患)"라는 구절에서 따왔다. 유성룡은 서문에서 난리 중의 일을 생각하면 부끄러움에 몸 둘 곳을 모르겠다며, 보고 들은 바를 적어 뒷날의 경계로 삼으려 한다고 밝혔다. 전쟁 전의 대일 관계부터 적어 전란의 단초를 밝히고, 특히 전쟁 초반 2년의 패전 원인을 자세히 다루었다.[1][2]

16권으로 간행된 판본은 다음과 같이 이루어져 있으며, 넓게는 이 전체를 『징비록』이라 부른다.

  • 『징비록』 2권 - 임진왜란의 원인과 전황 기록. 좁은 뜻의 징비록이다.
  • 『근폭집』 2권 - 유성룡이 올린 차자와 계사.
  • 『진사록』 9권 - 1592~1593년 종군하며 올린 장계.
  • 『군문등록』 2권 - 1595~1598년 도체찰사로 있으며 주고받은 공문.
  • 『녹후잡기』 - 전란 7년 동안 보고 들은 일을 수필처럼 적은 글.

본문과 『녹후잡기』만으로 된 2권본도 따로 전한다.

  • 간행 - 흔히 1647년(인조 25) 외손 조수익이 경상도 관찰사로 있을 때 처음 간행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1633년 아들 유진이 『서애집』을 낼 때 함께 실었다는 설 등도 있어, 첫 간행 시기는 확실하지 않다.[1][2]
  • 일본 유출 - 1695년(숙종 21) 일본 교토의 야마토야에서 다시 간행되어 일본 여러 책에 인용되었다. 이에 조정은 1712년(숙종 38) 『징비록』을 일본에 내보내지 못하게 했다.
  • 국보 - 유성룡 종가에 전하던 필사 초고본 1책은 1969년 국보로 지정되었고(옛 지정 번호 제132호), 지금은 안동의 한국국학진흥원이 관리한다.[3]

임진왜란을 다룬 기록과 구별하기

편집 원본 편집
기록 지은이와 성격
『징비록』 유성룡, 재상으로서 전쟁 전체를 돌아본 회고록
『난중일기』 이순신, 진중에서 날마다 쓴 일기
『동의보감』 허준, 전란 뒤 완성한 의서 (→ 동의보감)
  1. ↑ 1.0 1.1 징비록,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6-10-19 확인.
  2. ↑ 2.0 2.1 왜란에 대한 총평 - 징비록, 우리역사넷 사료로 본 한국사, 국사편찬위원회, 2026-10-19 확인.
  3. ↑ 국보 징비록, 국가유산포털, 국가유산청, 2026-10-19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