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도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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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도살인(借刀殺人)은 남의 칼을 빌려 사람을 죽인다는 뜻으로, 자기는 나서지 않고 남의 손을 빌려 상대를 해치는 음험한 수단을 이르는 한자성어이다.[1] 병법서 《삼십육계》의 제3계이기도 하다.
제3자를 부추기거나 속여 그가 내 적을 치게 만들고, 나는 힘을 들이지 않으며 책임도 지지 않는 방법을 가리킨다. 병법에서는 동맹이나 제3국을 움직여 적을 약하게 하는 계책을 말하지만, 일상에서는 주로 남을 이용해 경쟁자를 몰아내는 비열한 술수를 비난할 때 쓴다. 남의 힘으로 적을 친다는 점에서 이이제이(以夷制夷)와 통하지만, 이이제이는 적끼리 싸우게 하는 데, 차도살인은 남의 손을 빌려 내 목적을 이루는 데 무게가 있다.
중국어에서도 ‘借刀殺人(jiè dāo shā rén)’이라 하며, 대만 교육부 《성어전》은 “남의 칼을 빌려 사람을 죽인다는 것으로, 남의 손을 빌려 사람을 해치는 것을 비유한다”고 풀이한다.[2] 일본어에서는 ‘借刀殺人(しゃくとうさつじん)’이라 쓰지만 일상어로는 드물다.
특정한 고사 하나에서 나온 말은 아니다. 《성어전》은 이 말이 명나라 왕정눌(汪廷訥)의 희곡 《삼축기(三祝記)》 상권 〈조함(造陷)〉에서 나온 것으로 보이는데, 확실하지는 않다는 뜻으로 ‘語或出’이라고 적었다.[2] 북송의 명신 범중엄(范仲淹)을 미워하는 재상에게 그 수하가 계책을 올리는 장면이다.
方今趙元昊謀反,勢甚猖獗。朝廷欲選將興師,恩相明日表奏仲淹為環慶路經略招討使,以平元昊,這所謂借刀殺人,又顯得恩相以德報怨。此計何如?
“지금 조원호(趙元昊)가 반란을 꾀해 기세가 매우 사납습니다. 조정에서 장수를 골라 군사를 일으키려 하니, 상공께서 내일 범중엄을 환경로(環慶路) 경략초토사로 삼아 원호를 평정하게 하자고 아뢰십시오. 이것이 이른바 남의 칼을 빌려 사람을 죽이는 것이요, 또 상공께서 덕으로 원한을 갚는 분이라는 것도 드러나게 됩니다. 이 계책이 어떻습니까?” 싸움 경험이 없는 정적을 전쟁터로 보내 적의 손에 죽게 하려는 꾀이다. 여기서도 “이른바(所謂)”라고 하여 이미 쓰이던 말을 끌어 쓴 모양새이다.
청나라 소설에서는 흔한 표현이 되었다. 《경화연(鏡花緣)》 제58회는 여러 부류의 강도를 늘어놓으며 “남의 칼을 빌려 사람을 죽이는 강도(借刀殺人的強盜)”를 들고,[2] 《홍루몽(紅樓夢)》은 ‘칼(刀)’ 대신 ‘검(劍)’을 써서 ‘借劍殺人’이라 했다. 제16회에서 왕희봉(王熙鳳)은 집안의 집사 부인들이 쓰는 술수로 “앉아서 범 싸움을 구경하기(坐山觀虎鬥)”, “남의 검을 빌려 사람 죽이기(借劍殺人)” 등을 늘어놓고, 제69회의 회목은 왕희봉이 추동(秋桐)을 부추겨 우이저(尤二姐)를 죽음으로 몰아넣는 이야기를 ‘弄小巧用借劍殺人’이라 했다.[3]
《성어전》은 이 말의 뜻을 잘 보여 주는 이야기로 《후한서》 〈예형전(禰衡傳)〉을 든다. 재주는 뛰어나지만 오만한 예형에게 화가 난 조조는 이름난 선비를 죽였다는 비난을 피하려고 그를 형주의 유표(劉表)에게 보냈고, 유표도 견디지 못해 성미가 급한 강하 태수 황조(黃祖)에게 보냈는데, 결국 예형은 황조의 손에 죽었다는 것이다.[2]
나무위키 등에는 이 말이 초나라 비무극(費無極)이 영윤 자상(子常, 낭와)을 속여 극완(郤宛)을 죽이게 한 사건에서 유래했다고 소개하는 경우가 있다. 이 사건은 《좌전》 소공(昭公) 27년에 실려 있고 차도살인의 좋은 예이지만, 그 기록에는 ‘借刀殺人’이라는 말이 없다.[4] 《좌전》에 따르면 비무극은 극완에게는 영윤이 그 집에서 술을 마시고 싶어 한다고 하고, 영윤에게는 극완이 술을 대접하려 한다고 했다. 그러고는 영윤이 갑옷과 무기를 좋아하니 문 앞에 늘어놓으라고 극완에게 일러 두고, 영윤에게는 극완이 문에 갑병을 숨겨 해치려 한다고 고했다. 영윤이 사람을 보내 보니 과연 갑옷이 있었으므로 극씨를 공격했고, 극완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으며 그 일족도 멸망했다. 뒤에 비무극은 여론이 들끓자 자상의 손에 죽었다.[4]
《삼십육계》는 승전계(勝戰計)의 셋째 계책으로 차도살인을 들었다.
敵已明,友未定,引友殺敵,不自出力,以《損》推演。
“적은 이미 드러났는데 우방은 아직 태도를 정하지 않았다면, 우방을 끌어들여 적을 치게 하고 내 힘은 들이지 않는다. 《주역》의 손괘(損卦)로 미루어 헤아린다.” 손괘는 아래를 덜어 위를 보탠다는 괘로, 남의 손실이 나의 이익으로 바뀌는 이치를 빌려 왔다. 이어지는 해설(按語)은 두 가지 예를 든다.[5]
- 정 환공의 회나라 습격: 정(鄭)나라 환공(桓公)이 회(鄶)나라를 치려 할 때, 먼저 회나라의 호걸·충신·지혜롭고 과감한 신하들의 이름을 적어 그들에게 회나라의 좋은 땅과 벼슬을 주겠다는 문서를 만들고, 성문 밖에 단을 쌓아 묻은 뒤 닭과 수퇘지의 피를 발라 맹약한 것처럼 꾸몄다. 회나라 임금은 내란이 일어나려는 줄 알고 어진 신하들을 모두 죽였고, 환공은 회나라를 쳐서 차지했다. 이 이야기는 《한비자》 〈내저설 하(內儲說下)〉에 “닭과 수퇘지의 피를 써서 회나라의 뛰어난 인물이 다 죽었다(用雞猳而鄶桀盡)”로 실려 있다.[6]
- 관우의 최후: 관우가 번성(樊城)을 에워싸자 조조가 도읍을 옮기려 했는데, 사마의(司馬懿)와 장제(蔣濟)가 손권에게 강남 땅을 떼어 주겠다고 하고 관우의 뒤를 치게 하면 번성의 포위가 저절로 풀린다고 했다. 조조가 이를 따랐고 관우는 끝내 사로잡혔다. 정사 《삼국지》 〈관우전〉에도 사마의와 장제가 “관우가 뜻을 얻는 것을 손권은 반드시 바라지 않을 것이니, 사람을 보내 손권에게 그 뒤를 밟게 하고 강남을 떼어 봉해 주겠다고 하면 번성의 포위가 저절로 풀릴 것”이라 하고 조조가 따랐다는 기록이 있다.[7]
《삼십육계》는 저자와 엮은 시기를 알 수 없는 늦은 시기의 책으로, 1941년 무렵 발견된 필사본을 찍은 소책자가 1961년 소개되면서 알려졌고, 명나라 말 이전으로 올라가지 않는다는 견해가 있다.[8] 따라서 ‘차도살인’이라는 말이 《삼십육계》에서 생긴 것이 아니라, 명청 시대에 이미 쓰이던 말을 계책 이름으로 거둔 것으로 볼 수 있다.
- 그는 경쟁자의 사소한 실수를 일부러 윗선에 흘려, 자기 손은 더럽히지 않고 상대를 밀어내는 차도살인을 썼다.
- 공격자가 정상 관리 도구를 탈취해 내부 시스템을 망가뜨리는 수법은 남의 칼을 빌리는 차도살인과 같아서, 행위의 주체를 가려내기가 어렵다.
-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차도살인”,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C%B0%A8%EB%8F%84%EC%82%B4%EC%9D%B8, 확인날짜=2026-10-03.
- ↑ 2.0 2.1 2.2 2.3 2.4 2.5 대만 교육부 《성어전(成語典)》 2020, “借刀殺人”, https://dict.idioms.moe.edu.tw/idiomView.jsp?ID=748, 확인날짜=2026-10-03.
- ↑ 조설근(曹雪芹), 《홍루몽(紅樓夢)》 제16회·제69회.
- ↑ 4.0 4.1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소공(昭公) 27년.
- ↑ 5.0 5.1 《삼십육계(三十六計)》 〈승전계(勝戰計)〉 제3계 ‘차도살인’.
- ↑ 《한비자(韓非子)》 〈내저설 하(內儲說下)〉.
- ↑ 진수(陳壽), 《삼국지(三國志)》 권36 〈촉서·관우전(關羽傳)〉.
- ↑ 슝젠(熊建), “《三十六计》:‘地摊文学’竟成了‘国学经典’(子曰诗云)”, 《인민일보 해외판(人民日报海外版)》, 2023-09-01, 제11면, http://paper.people.com.cn/rmrbhwb/html/2023-09/01/content_26014471.htm, 확인날짜=2026-1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