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인계
더 많은 작업
미인계(美人計)는 미인을 이용하여 사람을 꾀는 계략을 뜻하는 한자성어이다.[1] 병법서 《삼십육계》에서는 제31계로 꼽힌다.
아름다운 사람을 앞세워 상대를 유혹하고, 그 틈에 상대의 판단을 흐리거나 정보를 빼내거나 내부를 갈라놓는 계책을 말한다. 옛날에는 강한 나라의 임금이나 장수에게 미녀를 바쳐 정사를 게을리하게 만드는 외교·군사 책략을 가리켰고, 오늘날에는 첩보 활동이나 범죄에서 이성을 미끼로 삼는 수법을 두루 이른다. 영어의 ‘honey trap’이 이에 가깝다.
중국어에서도 ‘美人計(měi rén jì)’라 하고, 일본어에서도 ‘美人計(びじんけい)’라고 하며, 같은 뜻으로 ‘ハニートラップ(허니 트랩)’이라는 외래어도 쓴다. 대만 교육부 《성어전》에는 표제어로 실려 있지 않다.
‘미인계’라는 이름은 늦게 생겼지만, 미녀를 바쳐 적을 무너뜨린다는 생각은 오래되었다. 전국 시대 말의 《한비자(韓非子)》 〈내저설 하(內儲說下)〉는 적국이 쓰는 술책을 늘어놓으면서 “미인을 들여보내 우(虞)나라와 괵(虢)나라가 망했다(内美人而虞、虢亡)”고 했다.[2]
가장 널리 알려진 예는 월(越)나라가 오(吳)나라에 서시(西施)를 바친 이야기이다. 그러나 정사에는 서시가 나오지 않는다. 《사기(史記)》 〈월왕구천세가(越王句踐世家)〉는 회계(會稽)에서 포위당한 구천이 대부 문종(文種)을 시켜 “미녀와 보물(美女寶器)”을 오나라 태재 백비(伯嚭)에게 몰래 바쳐 화친을 얻었다고만 적었다.[3] 서시와 정단(鄭旦)의 이름은 후한 때 조엽(趙曄)이 엮은 《오월춘추(吳越春秋)》 〈구천음모외전(句踐陰謀外傳)〉에 나온다. 여기서 구천이 “오왕은 음탕하고 여색을 좋아한다는데 이를 이용해 꾀할 수 있겠는가”라고 묻자 문종은 “가서 미녀를 바치면 반드시 받을 것”이라고 답했다.
乃使相者國中得苧蘿山鬻薪之女,曰西施、鄭旦。飾以羅榖,教以容步,習於土城,臨於都巷。三年學服而獻於吳。
“이에 관상 보는 사람을 시켜 나라 안에서 저라산(苧蘿山)의 땔나무 파는 처녀를 찾아냈으니 서시와 정단이었다. 비단옷으로 꾸미고 걸음걸이를 가르쳐 토성(土城)에서 익히게 하고 도성 거리에 나서게 하여, 3년 동안 몸가짐을 배운 뒤 오나라에 바쳤다.” 범려(范蠡)가 두 여인을 바치자 오자서(伍子胥)는 “어진 선비는 나라의 보배요 미녀는 나라의 재앙(賢士國之寶,美女國之咎)”이라며, 하나라는 말희(妺喜) 때문에, 은나라는 달기(妲己) 때문에, 주나라는 포사(褒姒) 때문에 망했다고 간했지만, 오왕 부차(夫差)는 듣지 않았다.[4] 이 이야기가 흔히 미인계의 대표 사례로 꼽힌다.
나무위키 등 일부 매체에서는 ‘미인계’라는 말이 《삼십육계》에서 처음 나왔다고 소개하는 경우가 있으나, 이 말은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에 이미 나온다. 제54회에서 손권(孫權)은 누이를 유비에게 시집보낸다는 명목으로 유비를 오나라로 불러들여 가두고 형주를 내놓게 하려는 주유(周瑜)의 계략을 따랐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손부인의 어머니 오국태(吳國太)는 주유를 이렇게 꾸짖는다.
汝做六郡八十一州大都督,直恁無條計策去取荊州,卻將我女兒為名,使美人計!殺了劉備,我女便是望門寡,將來再怎的說親?須誤了我女兒一世!
“너는 여섯 군 여든한 주의 대도독이라면서 형주를 얻을 계책 하나 없이 내 딸을 핑계 삼아 미인계를 쓰느냐! 유비를 죽이면 내 딸은 혼례도 못 치르고 과부가 될 터인데 앞으로 어떻게 혼사를 말하겠느냐? 내 딸 한평생을 그르칠 셈이냐!” 결국 오국태가 유비를 마음에 들어 해 혼사는 진짜가 되었고, 유비는 손부인과 함께 형주로 돌아갔다. 제55회에서 제갈량은 뒤쫓아 온 오나라 장수들에게 “주랑(周郞)에게 다시는 미인국(美人局) 같은 수단을 쓰지 말라고 전하라”고 한다.[6]
정사와 견주면 이야기가 크게 다르다. 정사 《삼국지》 〈주유전(周瑜傳)〉에는 유비가 손권을 만나러 왔을 때 주유가 “유비를 오나라로 옮겨 두고 궁실을 크게 지어 주며 미녀와 노리개를 많이 주어 귀와 눈을 즐겁게 하고(多其美女玩好,以娛其耳目)”, 관우·장비와 떼어 놓자고 상소한 기록이 있다. 그러나 손권은 북쪽의 조조를 막으려면 영웅을 널리 끌어들여야 한다며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7] 손권이 유비를 두려워해 누이를 시집보내 우호를 굳힌 일 자체는 정사 〈선주전〉에도 있지만(權稍畏之,進妹固好),[8] 혼인을 미끼로 유비를 죽이려 했다는 줄거리는 연의가 꾸민 것이다.
《삼십육계》는 패전계(敗戰計), 곧 형세가 불리할 때 쓰는 마지막 묶음의 첫 계책으로 미인계를 두었다.
兵強者,攻其將;兵智者,伐其情。將弱兵頹,其勢自萎。利用御寇,順相保也。
“군사가 강하면 그 장수를 공략하고, 지혜로우면 그 마음을 친다. 장수가 약해지고 군사가 무너지면 그 기세는 저절로 시든다. 이를 이용해 적을 막으면 순조롭게 스스로를 지킬 수 있다.” 해설(按語)은 강한 적을 섬기는 방법을 셋으로 나눈다. 땅을 바쳐 섬기는 것은 전국 시대 여섯 나라가 진나라를 섬긴 것과 같아 가장 낮은 계책이고, 재물을 바쳐 섬기는 것은 송나라가 요·금을 섬긴 것과 같아 낮은 계책이며, 오직 미인을 바쳐 적의 뜻을 게으르게 하고 몸을 약하게 하며 아랫사람의 원망을 키우는 것이 낫다고 하고, 구천이 서시와 보물로 부차의 환심을 산 일을 든다.[9]
《삼십육계》는 1941년 무렵 발견된 필사본을 찍은 소책자가 1961년 소개되면서 알려진 책으로, 저자와 엮은 시기를 알 수 없고 명나라 말 이전으로 올라가지 않는다는 견해가 있다.[10] ‘미인계’는 그보다 앞서 소설에서 쓰이던 말을 계책 이름으로 받아들인 것으로 보인다.
《조선왕조실록》 원문에는 ‘美人計’가 보이지 않고, 국역본의 주석에만 나온다.[11] 문집에는 몇 예가 있다.
- 18세기 송명흠(宋明欽)의 연보에는, 동궁이 왕소군(王昭君)을 흉노에 시집보낸 일을 어떻게 보느냐고 묻자 송명흠이 “평성(平城)의 포위를 미인계로 풀었고, 그 뒤로 이것을 오랑캐와 화친하는 묘책으로 삼았다(平城之圍。以美人計得解。自是之後。以此爲和戎之妙策)”고 답한 대목이 있다.[12] 한 고조가 평성에서 흉노에게 포위되었다가 진평(陳平)의 계책으로 빠져나온 일을 말하는데, 《사기》 〈진승상세가〉는 진평이 선우의 아내(閼氏)에게 사람을 보내 포위가 풀렸다고만 하고 “그 계책은 비밀이어서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다(其計祕,世莫得聞)”고 적었다.[13] 미인을 이용했다는 설명은 후대의 해석이다.
- 19세기 박기종(朴淇鍾)은 〈독삼국지(讀三國志)〉에서 주유가 “미인계를 꾸며 선주(유비)를 해치려 했다(設美人計而欲害先主)”고 평했다.[14] 연의의 줄거리를 그대로 받아들인 평이다.
일본어의 ‘美人局’은 ‘つつもたせ(쓰쓰모타세)’라고 읽으며, 여자가 남편이나 정부와 짜고 다른 남자를 꾀어 간통하게 한 뒤 남자가 나타나 돈을 뜯어내는 수법을 말한다. 《디지털 다이지센》은 이 한자 표기가 중국의 《무림구사(武林舊事)》에 나오는 중국어 ‘美人局’을 갖다 붙인 것이라고 설명한다.[15] 미인을 미끼로 쓴다는 점은 같지만, 일본어에서 ‘美人局’은 공갈 수법의 이름이다.
- 그 스파이는 미인계로 외교관에게 접근해 기밀문서를 빼냈다.
- 보안 교육에서는 온라인에서 갑자기 친근하게 다가와 업무 정보를 묻는 상대를 미인계형 사회공학 공격으로 의심하라고 가르친다.
- 소설 속 왕윤은 초선을 앞세운 미인계로 동탁과 여포 사이를 갈라놓았다.
-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미인계”,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B%AF%B8%EC%9D%B8%EA%B3%84, 확인날짜=2026-10-03.
- ↑ 《한비자(韓非子)》 〈내저설 하(內儲說下)〉.
- ↑ 사마천, 《사기》 권41 〈월왕구천세가(越王句踐世家)〉.
- ↑ 4.0 4.1 조엽(趙曄), 《오월춘추(吳越春秋)》 〈구천음모외전(句踐陰謀外傳)〉.
- ↑ 나관중,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 제54회.
- ↑ 나관중, 《삼국지연의》 제55회.
- ↑ 진수(陳壽), 《삼국지(三國志)》 권54 〈오서·주유전(周瑜傳)〉.
- ↑ 진수(陳壽), 《삼국지》 권32 〈촉서·선주전(先主傳)〉.
- ↑ 9.0 9.1 《삼십육계(三十六計)》 〈패전계(敗戰計)〉 제31계 ‘미인계’.
- ↑ 슝젠(熊建), “《三十六计》:‘地摊文学’竟成了‘国学经典’(子曰诗云)”, 《인민일보 해외판(人民日报海外版)》, 2023-09-01, 제11면, http://paper.people.com.cn/rmrbhwb/html/2023-09/01/content_26014471.htm, 확인날짜=2026-10-03.
-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원문 검색 “美人計”(0건), https://sillok.history.go.kr/, 확인날짜=2026-10-03.
- ↑ 송명흠(宋明欽), 〈연보(年譜)〉, 《역천집(櫟泉集)》 권19,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ITKC_MO_0521A_0190_010_0010, https://db.itkc.or.kr/, 확인날짜=2026-10-03.
- ↑ 사마천, 《사기》 권56 〈진승상세가(陳丞相世家)〉.
- ↑ 박기종(朴淇鍾), 〈독삼국지(讀三國志)〉, 《죽포집(竹圃集)》 권9,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ITKC_MO_1233A_0100_010_0010, https://db.itkc.or.kr/, 확인날짜=2026-10-03.
- ↑ 《디지털 다이지센(デジタル大辞泉)》·《정선판 일본국어대사전(精選版 日本国語大辞典)》, “美人局”, 코토뱅크, https://kotobank.jp/word/%E7%BE%8E%E4%BA%BA%E5%B1%80, 확인날짜=2026-1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