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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환계(連環計)는 고리를 잇듯 여러 계책을 연달아 써서 적을 무너뜨리는 계책을 뜻하는 한자성어이다. 표준국어대사전은 “간첩을 적에게 보내어 계교를 꾸미게 하고, 그사이에 자신은 승리를 얻는 계교”로 풀이하고, 삼국 시대에 오나라의 주유(周瑜)가 조조의 군사를 불로 공격할 때 방통(龐統)을 보내어 조조의 군함들을 쇠고리로 연결시키게 하였다는 데서 유래한다고 설명한다.[1] 병법서 《삼십육계》의 제35계이기도 하다.

‘연환(連環)’은 고리를 서로 꿰어 이은 것이다. 이 말은 두 가지 이야기와 함께 알려져 있다. 하나는 《삼국지연의》 제8회에서 왕윤(王允)이 초선(貂蟬)을 이용해 동탁(董卓)과 여포(呂布)를 갈라놓은 계책이고, 다른 하나는 제47회에서 방통이 조조에게 배를 쇠고리로 묶게 한 계책이다. 앞의 것은 여러 계책을 차례로 엮었다는 뜻의 ‘연환’이고, 뒤의 것은 배를 실제 고리로 이었다는 뜻의 ‘연환’이다. 표준국어대사전의 뜻풀이는 뒤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다.[1]

오늘날에는 하나의 계략이 다음 계략으로 이어지도록 짜인 치밀한 술책을 가리킬 때 쓴다. 중국어에서도 ‘連環計(lián huán jì)’라 하고, 일본어에서는 ‘連環計(れんかんけい)’, ‘連環の計’라고 한다.

한자 음 기본 의미 성어 안의 의미
連 연(련) 잇다 잇달아 잇다
環 환 고리 고리, 고리처럼 엮인 것
計 계 셈하다, 꾀 계책

왕윤과 초선의 연환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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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의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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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 제8회의 회목은 “왕사도가 교묘히 연환계를 쓰다(王司徒巧使連環計)”이다. 동탁이 권력을 휘두르자 사도 왕윤은 밤마다 근심했는데, 집안의 가기(歌伎) 초선이 그 뜻을 알고 목숨을 바치겠다고 했다. 왕윤은 초선에게 이렇게 말했다.

賊臣董卓,將欲篡位;朝中文武,無計可施。董卓有一義兒,姓呂,名布,驍勇異常。我看二人皆好色之徒,今欲用連環計:先將汝許嫁呂布,後獻與董卓;汝於中取便,謀間他父子反顏,令布殺卓,以絕大惡。

[2]

“역적 동탁이 제위를 빼앗으려 하는데 조정의 문무 신하들은 손쓸 방법이 없다. 동탁에게는 여포라는 수양아들이 있는데 몹시 용맹하다. 내가 보니 두 사람 모두 여색을 좋아하는 무리이니, 이제 연환계를 쓰려 한다. 먼저 너를 여포에게 시집보내기로 약속하고 뒤에 동탁에게 바치겠다. 너는 그 사이에서 기회를 보아 두 부자 사이를 갈라놓아, 여포가 동탁을 죽이게 해서 큰 악을 끊어라.” 이야기는 초선이 여포와 동탁 사이를 오가며 둘을 다투게 하고, 봉의정(鳳儀亭)에서 동탁이 여포에게 화극(畫戟)을 던지는 장면을 거쳐, 제9회에서 여포가 동탁을 죽이는 것으로 이어진다.[2] 미녀를 앞세운 미인계와 둘 사이를 갈라놓는 이간책이 한 고리로 엮였다는 점에서 ‘연환계’라 불렀다.

정사에는 초선이라는 인물이 없다. 진수(陳壽)의 《삼국지》 〈여포전(呂布傳)〉에 따르면, 동탁은 성미가 거칠어 조금만 뜻에 맞지 않아도 손에 든 극(戟)을 여포에게 던졌고, 여포가 재빨리 피한 뒤 사과해 넘어간 일이 있었는데, 이 때문에 여포는 속으로 동탁을 원망했다. 또 여포는 동탁의 거처를 지키다가 동탁의 시비(侍婢)와 사통하여, 일이 드러날까 봐 불안해했다.

卓常使布守中閤,布與卓侍婢私通,恐事發覺,心不自安。先是,司徒王允以布州里壯健,厚接納之。後布詣允,陳卓幾見殺狀。時允與僕射士孫瑞密謀誅卓,是以告布使為內應。布曰:「奈如父子何!」允曰:「君自姓呂,本非骨肉。今憂死不暇,何謂父子?」布遂許之,手刃刺卓。

[3]

같은 고향 사람이라며 여포를 후하게 대해 오던 왕윤은 여포가 동탁에게 죽을 뻔한 이야기를 털어놓자, 마침 복야 사손서(士孫瑞)와 꾸미던 동탁 제거 계획에 그를 끌어들였다. 여포가 “부자 사이인데 어찌하겠습니까”라고 망설이자 왕윤은 “그대의 성은 본래 여씨이니 골육이 아니다. 지금 죽을 걱정도 바쁜데 무슨 부자를 말하는가”라고 했고, 여포는 마침내 동탁을 찔렀다.[3] 곧 정사에서 여포가 동탁을 배신한 까닭은 극을 맞을 뻔한 원한과 시비와의 사통이 드러날 두려움이었고, 왕윤이 미녀를 보낸 계책은 없었다. 연의는 이름 없는 ‘시비’를 초선으로 바꾸고, 왕윤이 처음부터 그를 보낸 것으로 이야기를 엮었다.

이 이야기는 연의 이전의 원나라 잡극 《금운당암정연환계(錦雲堂暗定連環計)》에서 이미 ‘연환계’라는 이름으로 다루어졌다. 이 잡극에서는 채옹(蔡邕)이 왕윤을 찾아와 동탁과 여포 사이를 이간할 방도를 일러 주며 “소관이 재주는 없으나 계책 하나를 바치고자 하니, 이름하여 ‘연환계’라 합니다(小官不才,願獻一策,名曰『連環計』)”라고 한다.[4] 루쉰(魯迅)은 《중국소설사략(中國小說史略)》에서 금·원 잡극이 삼국 이야기를 많이 다루었다며 《연환계》를 그 예로 들었다.[5]

방통의 연환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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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의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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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연의》 제47회의 회목은 “방통이 교묘히 연환계를 일러 주다(龐統巧授連環計)”이다. 주유가 화공을 준비할 때, 방통은 노숙(魯肅)에게 “큰 강 위에서는 배 한 척에 불이 붙으면 나머지 배는 사방으로 흩어지니, 연환계를 써서 저들이 배를 한데 묶게 해야 공을 이룰 수 있다”고 했다. 방통은 조조의 진영으로 가서, 북쪽 군사가 배멀미로 병이 나는 것을 걱정하는 조조에게 이렇게 권했다.

若以大船小船各皆配搭,或三十為一排,或五十為一排,首尾用鐵環連鎖,上鋪闊板,休言人可渡,馬亦可走矣。

[6]

“큰 배와 작은 배를 서로 짝지어 서른 척이나 쉰 척씩 한 줄로 만들고, 앞뒤를 쇠고리로 이어 묶은 뒤 그 위에 넓은 판자를 깔면 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말도 다닐 수 있습니다.” 조조는 크게 기뻐해 대장장이들에게 밤새 고리와 큰 못을 만들게 했다.[6] 제49회에서 황개(黃蓋)의 화선(火船)이 들이닥치자, 쇠고리에 묶인 조조의 배들은 피할 곳 없이 모두 불탔다.[7] 이 과정에는 황개가 매를 맞고 거짓으로 항복하는 고육계, 장간(蔣幹)과 채중(蔡中)·채화(蔡和)를 이용한 반간계가 함께 엮여 있다.

정사에는 방통이 조조에게 배를 묶으라고 권한 기록이 없다. 《삼국지》 〈주유전(周瑜傳)〉에 따르면, 조조군이 이미 병에 시달리다 첫 싸움에서 지고 강북으로 물러나자, 주유의 부장 황개가 이렇게 말했다.

今寇眾我寡,難與持久。然觀操軍船艦,首尾相接,可燒而走也。

[8]

“지금 적은 많고 우리는 적어 오래 버티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조조군의 배를 보니 앞뒤가 서로 붙어 있으니 불태워 달아나게 할 수 있습니다.” 황개는 몽충(蒙衝)과 투함(鬪艦) 수십 척에 마른 풀과 기름을 싣고 조조에게 항복하겠다는 편지를 보낸 뒤 불을 놓았다.[8] 조조의 배가 서로 붙어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조조군 스스로의 배치였고 누가 꾀어서 묶게 했다는 말은 없다. 《삼국지》 〈방통전(龐統傳)〉에는 방통이 고을의 공조(功曹)를 지냈고, 남군(南郡) 태수가 된 주유가 죽자 그 상여를 오나라로 호송했다는 기록이 있을 뿐, 적벽 싸움에서 한 일은 나오지 않는다.[9]

《삼십육계》의 제35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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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십육계》는 패전계(敗戰計)의 다섯째 계책으로 연환계를 두었다.

將多兵眾,不可以敵,使其自累,以殺其勢。在師中吉,承天寵也。

[10]

“적의 장수가 많고 군사가 많으면 맞서서는 안 되니, 적이 스스로 얽매이게 하여 그 기세를 꺾는다. 군중에 있으면서 길하니 하늘의 은총을 받는다.” 뒤 구절은 《주역》 사괘(師卦)의 말을 빌린 것이다. 해설(按語)은 첫머리에서 “방통이 조조의 전함을 서로 걸어 묶게 한 뒤 불을 질러 빠져나가지 못하게 했다”는 연의의 이야기를 들고, “한 계책으로 적을 얽매고 다른 계책으로 적을 쳐서, 두 계책을 맞물려 써서 강한 세력을 꺾는다(一計累敵,一計攻敵,兩計扣用,以摧強勢也)”고 풀었다. 이어 남송의 장수 필재우(畢再遇)가 금나라 군사를 이리저리 끌고 다녀 지치게 한 뒤, 향료로 삶은 검은콩을 땅에 뿌려 놓고 거짓으로 달아나 굶주린 적의 말이 콩만 먹고 움직이지 않을 때 반격한 일을 예로 든다.[10]

해설이 정사가 아닌 《삼국지연의》의 장면을 첫 예로 드는 것은, 이 책이 연의 이후에 엮였음을 보여 준다. 《삼십육계》는 1941년 무렵 발견된 필사본을 찍은 소책자가 1961년 소개되면서 알려졌고, 명나라 말 이전으로 올라가지 않는다는 견해가 있다.[11]

한국 문헌의 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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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 원문에는 ‘連環計’가 보이지 않는다.[12] 19세기 박기종(朴淇鍾)은 〈독삼국지(讀三國志)〉에서 방통이 연환계를 바친 일을 두고 지모가 넉넉했다고 하면서도, 그 재주는 제갈량에 훨씬 못 미친다고 평했다.[13]

  • 그 사기단은 가짜 투자 설명회, 위조된 수익 증명, 지인 추천을 차례로 엮은 연환계로 피해자를 끌어들였다.
  • 공격자는 피싱 메일로 계정을 얻고, 그 계정으로 내부 메일을 보내 다시 관리자 권한을 얻는 연환계를 썼다. 한 고리라도 끊으면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없으니, 단계마다 탐지 지점을 두어야 한다.
  • 《수호전(水滸傳)》 제50회(120회본)의 회목은 “오학구가 쌍장연환계를 쓰다(吳學究雙掌連環計)”로, 양산박의 오용(吳用)이 축가장(祝家莊)을 깨뜨리는 대목이다.[14] 원나라 이후 ‘연환계’가 계략을 이르는 말로 널리 쓰였음을 보여 준다.

유의어와 관련 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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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계중계(計中計): 계책 안의 계책. 겹겹이 짜인 계략.
  • 미인계(美人計): 미인을 이용해 사람을 꾀는 계략. 《삼십육계》 제31계.
  • 고육지책(苦肉之策): 제 몸을 해쳐 적을 속이는 계책. 적벽 싸움의 황개 이야기.
  • 반간계(反間計): 적의 첩자를 역이용하거나 적 내부를 이간하는 계책. 《삼십육계》 제33계.
  • 공성계(空城計): 성을 비워 적을 의심하게 하는 계책. 《삼십육계》 제32계.
  1. ↑ 1.0 1.1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연환계”,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C%97%B0%ED%99%98%EA%B3%84, 확인날짜=2026-10-03.
  2. ↑ 2.0 2.1 나관중, 《삼국지연의》 제8회.
  3. ↑ 3.0 3.1 진수(陳壽), 《삼국지(三國志)》 권7 〈위서·여포전(呂布傳)〉.
  4. ↑ 무명씨, 《금운당암정연환계(錦雲堂暗定連環計)》.
  5. ↑ 루쉰(魯迅), 《중국소설사략(中國小說史略)》 제14편.
  6. ↑ 6.0 6.1 나관중, 《삼국지연의》 제47회.
  7. ↑ 나관중, 《삼국지연의》 제49회.
  8. ↑ 8.0 8.1 진수(陳壽), 《삼국지(三國志)》 권54 〈오서·주유전(周瑜傳)〉.
  9. ↑ 진수(陳壽), 《삼국지》 권37 〈촉서·방통전(龐統傳)〉.
  10. ↑ 10.0 10.1 《삼십육계(三十六計)》 〈패전계(敗戰計)〉 제35계 ‘연환계’.
  11. ↑ 슝젠(熊建), “《三十六计》:‘地摊文学’竟成了‘国学经典’(子曰诗云)”, 《인민일보 해외판(人民日报海外版)》, 2023-09-01, 제11면, http://paper.people.com.cn/rmrbhwb/html/2023-09/01/content_26014471.htm, 확인날짜=2026-10-03.
  12.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원문 검색 “連環計”(0건), https://sillok.history.go.kr/, 확인날짜=2026-10-03.
  13. ↑ 박기종(朴淇鍾), 〈독삼국지(讀三國志)〉, 《죽포집(竹圃集)》 권9,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ITKC_MO_1233A_0100_010_0010, https://db.itkc.or.kr/, 확인날짜=2026-10-03.
  14. ↑ 시내암(施耐庵), 《수호전(水滸傳)》(120회본) 제50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