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월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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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월회(土月會)는 일본 도쿄의 한국인 유학생들이 문예 모임으로 시작해 1923년 서울에서 첫 공연을 올린 극단으로, 사실주의 무대를 내세워 신파극 일색이던 연극계에 근대극(신극)을 소개했다.
박승희·김기진·김복진·이서구·김을한 등 도쿄 유학생들이 문학·미술 작품을 함께 비평하는 모임으로 출발했다. 여름 방학에 귀국해 연극으로 대중에게 다가가기로 하고, 1923년 7월 서울 조선극장에서 첫 공연을 열었다.[1]
- 첫 공연 - 체호프의 「곰」, 버나드 쇼의 단막극, 박승희의 「길식」 등 단막극 4편을 올렸다. 사실적인 연기와 무대 장치가 주목받았으나 경험 부족으로 빚만 졌다.
- 2회 공연 - 같은 해 9월 톨스토이의 「부활」, 「알트 하이델베르크」 등을 올려 크게 성공했다. 「부활」의 카추샤 역 이월화가 인기를 끌었다.
- 전문 극단화 - 창립 동인 다수가 떠난 뒤 박승희가 극단을 이끌며 1924년부터 전속 관현악단을 둔 직업 극단으로 바꾸었다. 이후 「춘향전」 등으로 인기를 얻었으나 점차 흥행 위주의 개량 신파극으로 흘렀다.
- 「아리랑 고개」 - 1929년 땅을 잃고 간도로 떠나는 농민 가족의 이야기를 다룬 박승희의 「아리랑 고개」가 큰 반향을 일으켰다.
- 해산 - 경영난과 검열 속에 1931년 해산했고, 박승희는 이를 태양극장으로 이어 갔다.
과장된 신파극만 보던 관객에게 서구 근대극의 사실적 연기와 무대 미술을 보여 주어 한국 신극 운동의 출발점이 되었다. 다만 전문 극작가를 길러 내지 못했고, 후기에는 상업 극단으로 바뀌었다는 한계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