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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각사 (극장)(圓覺社, 1908~1909)는 1908년 서울 새문안 야주현에 문을 연 사설 극장으로, 같은 해 이인직의 신소설을 각색한 「은세계」를 올려 신극(新劇)의 출발점이 되었다.

1902년 고종 즉위 40주년 칭경 예식을 위해 세운 서양식 실내 극장 협률사가 문을 닫은 뒤, 그 건물을 고쳐 1908년 7월 원각사로 다시 열었다. 지금의 서울 광화문 새문안교회 근처에 있었다. 명창 김창환·이동백 등 판소리 명창 40명과 여성 연희자 24명을 전속으로 두었다.[1][2]

  • 「은세계」 - 1908년 11월 이인직이 쓴 신소설 「은세계」를 연극으로 올렸다. 강원도 감사의 탐학과 백성의 저항을 그린 작품으로, 전통 판소리를 바탕으로 하면서도 새로운 형식을 시도해 신연극이라 불렀다.
  • 창극 - 「춘향가」·「심청가」·「수궁가」·「흥부가」·「화용도」 같은 판소리를 여러 배우가 배역을 나누어 부르는 창극으로 공연했다.
  • 문을 닫음 - 재정난에 시달리다가 1909년 11월 공연을 멈추고 문을 닫았다. 이후 건물은 단체 사무소나 연설회·집회 장소로 가끔 빌려 쓰였다.

근대 극장·공연과 구별하기

편집 원본 편집
시기 사실
1902년 협률사 설립 (최초의 실내 극장)
1907년 단성사 설립 (뒤에 영화관이 됨)
1908년 원각사 (극장) 개관, 「은세계」 공연
1923년 도쿄 유학생들이 신극 단체 토월회 결성
1926년 나운규의 영화 「아리랑」 단성사 개봉
1925~1935년 계급 문학 단체 카프 활동

같은 이름의 서울 탑골공원 자리 절(원각사지 십층 석탑이 있는 곳)과는 다르다.

  1. ↑ 원각사,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6-10-18 확인.
  2. ↑ 협률사,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6-10-18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