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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주보(漢城周報, 1886~1888)는 갑신정변으로 끊긴 한성순보를 이어 1886년 박문국이 일주일마다 펴낸 신문으로, 처음으로 국한문을 섞어 썼고 우리나라 최초의 상업 광고를 실었다.

갑신정변 때 박문국이 불타 『한성순보』가 끊기자, 통리아문 독판 김윤식 등이 신문을 다시 내자고 나섰다. 정부는 처음에 민간 출판사 광인사에서 신문을 내게 하려다 방침을 바꾸어 박문국을 다시 짓고 일본에서 활자와 인쇄 시설을 들여왔다. 1886년 1월 25일 창간한 이 신문은 국한문 혼용을 처음 시도했으며, 기사에 따라 순 한글이나 순 한문으로 쓰기도 했다.[1] 우리역사넷 교과서 용어해설은 국내 기사를 주로 국한문으로, 외국 소식 일부를 순 한글로 실었다고 설명한다.[2]

  • 최초의 상업 광고 - 1886년 2월 22일자 제4호에 독일 상사 세창 양행이 짐승 가죽·담배·옛 동전 등을 사들이고 자명종·유리·단추·성냥 등 수입품을 판다는 광고를 실었다.[3]
  • 폐간 - 재정이 모자라 1888년 7월 박문국이 없어지면서 문을 닫았다. 폐간일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이 7월 7일(박문국 폐지일), 교과서 용어해설이 7월 14일로 적어 서로 다르다. 모두 120여 호가 나온 것으로 보이나 남은 실물이 적다.

박문국의 두 신문 구별하기

편집 원본 편집
구분 한성순보 한성주보
발행 1883~1884 1886~1888
주기 열흘마다 일주일마다
문자 순 한문 국한문 혼용(일부 순 한글·순 한문)
끝 갑신정변으로 중단 박문국 폐지로 폐간
  1. ↑ 한성주보,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6-10-18 확인.
  2. ↑ 한성주보, 교과서 용어해설, 국사편찬위원회 우리역사넷, 2026-10-18 확인.
  3. ↑ 독일 상사 세창 양행의 첫 광고, 한국문화사 20 『광고, 시대를 읽다』, 국사편찬위원회 우리역사넷, 2026-10-18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