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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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신문(獨立新聞, 1896~1899)은 1896년 4월 7일 서재필이 정부의 지원을 받아 창간한 우리나라 최초의 민간 신문으로, 한글판과 영문판을 함께 펴내며 독립 협회의 활동을 알리고 국민을 계몽했다.
갑신정변 실패 뒤 미국에 망명했던 서재필은 1895년 말 귀국해, 개혁이 성공하려면 민중의 지지가 필요하다고 보고 신문 발간을 추진했다. 김홍집 내각과 내부대신 유길준이 자금 지원을 약속했고, 아관 파천 뒤의 박정양 내각도 이를 이어받아 정부 예산으로 인쇄기와 활자를 마련했다. 정동의 정부 건물을 사옥으로 빌려 1896년 4월 7일 창간호를 냈다. 창간일인 4월 7일은 오늘날 신문의 날이다.[1]
- 순한글 - 국문판은 한자를 쓰지 않고 한글로만 썼으며, 읽기 쉽도록 처음으로 띄어쓰기를 했다. 주시경이 편집을 도왔다.
- 영문판 - 처음에는 4면 가운데 마지막 면을 영문으로 냈고, 1897년부터 『The Independent』로 따로 펴내 외국인에게 국내 사정을 알렸다.
- 발행 - 처음에는 화·목·토요일 주 3회 격일로 내다가 1898년 7월부터 일간으로 바꾸었다.
1896년 7월 독립 협회가 세워진 뒤 독립문·독립관 건립을 돕고, 러시아의 이권 침탈과 탐관오리를 비판했다. 1898년 서재필이 정부의 압력으로 미국으로 떠나자 윤치호가 주필을 맡았고, 이후 사실상 독립 협회의 기관지로서 자주 국권·자유 민권·자강 개혁을 주장했다. 1898년 말 독립 협회가 해산되자 어려움을 겪다가, 1899년 정부가 신문사를 사들인 뒤 12월 4일자를 끝으로 폐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