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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문국(博文局, 1883~1888)은 개항 뒤 인쇄와 출판을 맡기려고 설치한 관청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 신문인 『한성순보』를 펴냈다.

1882년 수신사로 일본에 다녀온 박영효는 한성 판윤이 되어 고종에게 신문 발행을 건의했고, 유길준이 실무를 맡아 준비했다. 박영효가 좌천되어 일이 멈추자 통리아문(통리교섭통상사무아문)의 김만식 등이 이어받았고, 1883년 8월 고종이 통리아문에 박문국을 두어 신문을 내도록 허락했다. 박문국은 한성부 저동에 자리 잡았고, 기자는 동문학 등에서 뽑은 관원이었다. 정부의 개화 정책과 국내외 소식을 알리는 관청 신문을 만드는 것이 주된 일이었다.[1]

한성순보와 한성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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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성순보』 - 1883년 10월 창간. 열흘마다(순간) 나온 관보 성격의 신문으로, 순 한문으로 썼다. 국내 관청 소식과 함께 외국 사정·근대 문물을 소개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 신문으로 꼽힌다.[2]
  • 중단 - 1884년 갑신정변 때 박문국 건물이 불타 신문 발행이 끊겼다.
  • 『한성주보』 - 1886년 1월 박문국을 다시 열고 일주일마다 펴낸 신문. 국한문을 섞어 썼고, 최초의 상업 광고(독일 상사 세창양행)를 실었다.
  • 폐지 - 구독료 수금이 잘 되지 않아 재정난을 겪다가 1888년 문을 닫았다.

개항 뒤 세운 근대 시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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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설 연도 하는 일
박문국 1883 인쇄·출판, 『한성순보』 발행
전환국 1883 화폐 주조(당오전 등)
기기창 1883 근대 무기 제조
우정총국 1884 근대 우편 업무. 개국 축하연에서 갑신정변이 일어남
육영 공원 1886 관립 근대 학교, 영어 교육
광혜원(제중원) 1885 서양식 국립 병원

신문과 구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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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 창간 특징
『한성순보』 1883 박문국, 순 한문, 열흘마다 발행하는 관보
독립신문 1896 서재필, 순 한글판과 영문판
대한매일신보 1904 베델·양기탁, 국채 보상 운동 지원
  1. ↑ 박문국,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6-10-18 확인.
  2. ↑ 한성순보,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6-10-18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