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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동 천태종(海東天台宗)은 고려 숙종 때 의천이 국청사를 근거로 연 불교 종파로, 『법화경』을 바탕으로 한 천태 교학을 내세워 교종의 입장에서 선종을 아우르고 교리 공부와 수행을 함께 닦는 교관겸수를 주장했다.

천태 교학은 일찍부터 전해져, 고려 광종 때 오월의 요청으로 천태 전적을 보내 주고 제관·의통 같은 고려 승려가 중국 천태종을 일으키는 데 이바지했다. 그러나 고려 안에 천태종이라는 종단은 없었다. 화엄종 승려였던 의천은 1085년 송에 가기 전부터 천태종을 세울 뜻을 품었고, 송에서 천태 교관을 배우고 돌아왔다.[1]

  • 국청사 - 1089년(선종 6) 인예 태후의 발원으로 짓기 시작해 1097년(숙종 2)에 완공되었다. 의천이 초대 주지가 되어 천태 교관을 강의하면서 천태종이 열렸다.
  • 교관겸수 - 경전의 이론(교)과 지관 수행(관)을 함께 닦아야 한다고 했다. 교종 승려는 마음을 살피는 수행을 하고 선종 승려는 교리를 익혀야 한다며, 어느 한쪽만 내세우는 것을 비판했다.[2]
  • 승려의 합류 - 선종 승려들이 대거 옮겨 왔으며, 영통사 대각국사비는 옛 종파를 버리고 귀의한 자가 1,000명에 가까웠다고 전한다.
  • 천태종 승선 - 천태종 승려를 뽑는 승선이 처음 열린 해를 사료로 본 한국사는 1099년(숙종 4)으로 적고, 『신편 한국사』와 백과사전은 1101년(숙종 6) 대선을 열어 40명을 뽑았다고 전한다.[3]

1101년 의천이 세상을 떠나자 선종에서 온 승려들이 떠나며 천태종은 침체했고, 교웅·덕소 등이 계보를 이었다. 무신 집권기에 요세가 강진 만덕산 백련사에서 법화 신앙과 참회 수행을 내건 결사를 열어 천태종을 다시 일으켰다. 조선 태조는 천태종 승려 조구를 국사로 삼았으나, 1424년(세종 6) 천태종은 조계종·총남종과 함께 선종으로 통합되었다.[1]

고려 불교의 통합 운동 구별하기

편집 원본 편집
흐름 인물 특징
해동 천태종 의천 교종 중심의 선종 통합, 교관겸수, 국청사
수선사 결사 지눌 선종 중심의 교종 포용, 정혜쌍수·돈오점수, 송광사
백련 결사 요세 천태종 계열, 법화 신앙과 참회, 강진 백련사
  1. ↑ 1.0 1.1 천태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6-10-18 확인.
  2. ↑ 대각국사 의천의 천태종 개창, 사료로 본 한국사, 우리역사넷, 국사편찬위원회, 2026-10-18 확인.
  3. ↑ (3) 의천의 행적과 연학, 『신편 한국사』 16, 우리역사넷, 국사편찬위원회, 2026-10-18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