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의 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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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의 불교는 고려 왕실과 귀족의 보호 아래 국가의 정신적 기반이 된 불교로, 시기에 따라 균여·의천·지눌·혜심·요세·일연 등이 교리와 교단의 흐름을 이끌었다.
태조는 훈요 10조에서 불교를 숭상하고 연등회·팔관회를 잘 지키라고 당부했다. 광종 때 승과를 실시하고 국사·왕사 제도를 두어 승려를 국가 질서 안에 편입했다. 사원은 토지와 노비를 받았고 승려에게는 면역 혜택이 주어졌다. 불교는 유교와 함께 존중되어, 유교가 정치 이념을 맡고 불교가 신앙과 수양을 맡는 관계였다.
전기에는 교종(화엄종 등)과 선종이 나뉘어 대립했는데, 의천이 교종 쪽에서 선종을 아우르려 했다. 무신 집권기에는 지눌·요세의 결사 운동이 불교계의 타락을 반성하며 새 흐름을 열었고, 원 간섭기 이후에는 사원이 권문세족과 결탁하며 폐단이 커져 신진 사대부의 비판을 받았다.
- 지눌(1158~1210) - 순천 송광사(수선사)를 중심으로 정혜결사를 열었다. 단번에 깨달은 뒤 꾸준히 닦아야 한다는 돈오점수, 선정과 지혜를 함께 닦는 정혜쌍수를 내세워 선종 중심으로 교종을 아울렀다. 『권수정혜결사문』·『수심결』을 지었다.[2]
- 혜심(1178~1234) - 지눌의 제자로 수선사 2세 사주가 되었다. 유교와 불교가 다르지 않다는 유불 일치설을 펴 성리학 수용의 바탕을 마련했고, 『선문염송집』을 엮었다. 최우가 두 아들을 그에게 출가시켰다.
- 요세(1163~1245) - 천태종 승려로, 강진 만덕산 백련사(만덕사)에서 백련 결사를 열었다. 법화 신앙과 참회 수행, 정토 신앙을 바탕으로 지방민의 호응을 얻었다.[3]
| 활동 | 인물 |
|---|---|
| 보현십원가, 귀법사, 화엄 교학 정리 | 균여 |
| 교장 간행, 해동 천태종, 교관겸수 | 의천 |
| 수선사(정혜결사), 돈오점수·정혜쌍수 | 지눌 |
| 유불 일치설, 『선문염송집』 | 혜심 |
| 백련 결사, 법화 신앙 | 요세 |
| 『삼국유사』 편찬 | 일연 |
| 임제종 도입(공민왕 때) | 보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