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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영식(洪英植, 1855~1884)은 조선 말의 개화파 관료로, 1883년 보빙사의 부대신으로 미국을 다녀온 뒤 근대 우편 업무를 맡은 우정총국의 총판이 되었고, 1884년 우정총국 개국 축하연에서 김옥균 등과 갑신정변을 일으켰다가 실패해 청군에게 죽었다.

1883년 미국 신문에 실린 보빙사 일행

영의정 홍순목의 아들로 문벌이 좋았다. 1881년 조사 시찰단의 일원으로 일본을 살펴보고 돌아와 통리기무아문에서 일했다.[1]

보빙사와 우정총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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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빙사 - 1883년(고종 20) 6월 미국 공사가 국서를 가져오자, 고종은 그 답례로 민영익을 전권대신, 홍영식을 부대신으로 삼아 미국에 보냈다. 이들은 미국 대통령 아서를 만나고 우체국·신문사·병원 등 근대 시설을 둘러보았으며, 홍영식은 그해 11월 먼저 돌아와 결과를 보고했다.[2]
  • 우정총국 - 1884년 3월 27일 고종은 우정총국을 세우게 하고 홍영식을 총판으로 삼았다. 미국과 일본에서 본 근대 우편 제도를 들여온 것이다.[3]

1884년 10월 17일(양력 12월 4일) 우정총국 개국 축하연을 틈타 김옥균·박영효 등과 갑신정변을 일으켰다. 새 정부에서 높은 자리를 맡았는데, 그 자리를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의 홍영식 항목은 좌의정으로, 김옥균 항목은 우의정으로 적는다. 정변이 청군의 개입으로 3일 만에 실패하자 다른 지도자들은 일본으로 피했지만, 홍영식은 고종을 끝까지 모시다 청군에게 죽었다. 아버지 홍순목도 이 일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정변 실패로 우정총국은 문을 닫고 근대 우편은 10년 넘게 멈추었다. 1894년 갑오개혁 때 명예가 회복되었다.[1]

보빙사 일행과 구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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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보빙사 직책 이후
민영익 전권대신 민씨 척족의 핵심, 갑신정변 때 중상
홍영식 부대신 우정총국 총판, 갑신정변 때 죽음
서광범 종사관 갑신정변 뒤 망명
유길준 수행원 미국 유학, 『서유견문』
  1. ↑ 1.0 1.1 홍영식,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6-10-28 확인.
  2. ↑ 『고종실록』 권20, 고종 20년(1883) 6월 5일 「민영익을 전권 대신에, 홍영식을 부대신에 임명하여 미국으로 보내다」, 조선왕조실록, 국사편찬위원회, 2026-10-28 확인.
  3. ↑ 『고종실록』 권21, 고종 21년(1884) 3월 27일 「우정 총국을 설립하도록 명하다」, 조선왕조실록, 국사편찬위원회, 2026-10-28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