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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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빙사(報聘使, 1883)는 조미 수호 통상 조약 뒤 미국 공사가 부임한 데 답례하려고 민영익을 정사로 삼아 미국에 보낸 조선 최초의 서양 외교 사절단이다.
조선은 1882년 서양 나라 가운데 처음으로 미국과 조미 수호 통상 조약을 맺었다. 1883년 5월 초대 주한 미국 공사 푸트가 서울에 오자, 조선 정부는 답례 사절(보빙사)을 보내기로 했다. 정사 민영익, 부사 홍영식, 종사관 서광범과 유길준·변수 등 개화파 인사가 일행을 이루어 1883년 7월 인천을 떠났다.[1]
- 국서 전달 - 미국 대통령 아서를 만나 국서를 전하고 두 나라의 우호와 교역을 논의했다.
- 시찰 - 박람회, 시범 농장, 방직 공장, 병원, 전기 회사, 철도 회사, 우체국, 육군 사관 학교 등을 둘러보고, 미국 교육국에서 교육 제도를 소개받았다.
- 귀국 - 홍영식 등은 먼저 돌아왔고, 민영익 일행은 유럽을 돌아 1884년 5월 귀국해 세계를 일주한 셈이 되었다.
- 유길준 - 미국에 남아 공부해 미국에서 유학한 최초의 한국인이 되었다. 뒤에 서양 견문을 정리해 『서유견문』을 지었다.
| 사절단 | 연도 | 간 곳과 목적 |
|---|---|---|
| 1차 수신사(김기수) | 1876 | 일본, 강화도 조약 뒤 일본 시찰 |
| 2차 수신사(김홍집) | 1880 | 일본, 『조선책략』을 가져옴 |
| 조사 시찰단 | 1881 | 일본, 비밀리에 근대 시설 시찰 |
| 영선사(김윤식) | 1881 | 청 톈진, 무기 제조 기술 학습 → 기기창 |
| 보빙사(민영익) | 1883 | 미국, 공사 부임에 대한 답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