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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리기무아문(統理機務衙門, 1880~1882)은 1880년 고종이 청의 총리아문을 본떠 설치한, 외교·군사·통상 등 개화 정책 전반을 총괄한 최고 기구이다.

1876년 개항 이후 고종은 개화 정책을 본격적으로 추진했다. 1880년 2차 수신사로 일본에 다녀온 김홍집이 황쭌셴의 『조선책략』을 들여오고, 청에서 신식 무기 제조법을 배우는 문제가 협의되던 가운데, 그해 12월(음력) 통리기무아문이 설치되었다. 정1품 아문으로 영의정 이최응이 총리대신을 맡았고, 흥선 대원군 때 되살렸던 삼군부를 없애고 그 청사를 썼다. 아래에 사대사·교린사·군무사·통상사·기계사·어학사 등 12사를 두어 실무를 나누어 맡겼다.[1]

  • 군제 개편 - 1881년 5군영을 무위영·장어영의 2영으로 줄이고, 신식 군대인 별기군을 창설해 일본인 교관에게 훈련받게 했다.
  • 조사 시찰단(1881) - 박정양·어윤중·홍영식 등을 일본에 비밀리에 보내 정부 기관과 산업 시설을 살피게 했다(신사 유람단).
  • 영선사(1881) - 김윤식이 이끄는 유학생과 기술자를 청 톈진에 보내 신식 무기 제조법과 군사 기술을 배우게 했다. 이들이 돌아온 뒤 1883년 서울에 근대식 무기 공장인 기기창을 세웠다.
  • 수교 추진 - 1882년 조미 수호 통상 조약 체결을 준비했다.
  • 개화 정책에 맞서 1881년 이만손 등 영남 유생들이 『조선책략』의 유포를 비판하는 영남 만인소를 올렸다.
  • 1882년 임오군란으로 재집권한 흥선 대원군이 통리기무아문과 별기군을 없애고 5군영과 삼군부를 되살렸다.
  • 군란 뒤 기무처를 거쳐 외교·통상을 맡은 통리교섭통상사무아문(외아문)과 내정을 맡은 통리군국사무아문(내아문)으로 나뉘었다.

삼군부 총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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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리기무아문이 청사로 쓴 삼군부의 중심 건물이 총무당이다. 원래 지금의 광화문 앞 정부서울청사 자리에 있었는데, 일제 강점기에 옮겨져 지금은 서울 성북구 삼선동에 있다.

다른 기구와 구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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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기구·때
무위영·장어영 2영 개편, 별기군 창설, 영선사·조사 시찰단 파견 통리기무아문(1880~1882)
과거제·신분제 폐지 등 1차 개혁 의안 심의 군국기무처(갑오개혁 1차, 1894)
8도를 23부로 개편 2차 갑오개혁(1895)
대한국 국제 반포, 이범윤을 간도 관리사로 파견 광무개혁(1899·1903)
역대 문물을 정리한 『동국문헌비고』 편찬 영조(1770)
  1. ↑ 통리기무아문,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6-10-18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