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R-71 블랙버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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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R-71 블랙버드(Lockheed SR-71 Blackbird)는 미국 록히드의 비밀 개발 조직 스컹크 웍스가 만든 초음속 전략 정찰기다. 마하 3.2로 순항하며 고도 약 2만 6,000m(8만 5,000피트)까지 날 수 있도록 설계됐고,[1] 1976년 세운 제트기 절대 속도·고도 기록을 지금까지 갖고 있다.[2]
1964년 12월 22일 처음 날았고, 모두 32대(SR-71A 29대, SR-71B 2대, SR-71C 1대)가 만들어졌다.[3]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A-12 정찰기(작전명 OXCART)를 바탕으로 미 공군용으로 다시 설계한 기체로, 1966년부터 미 공군이 운용하다가 1990년 1월 퇴역했다. 1990년대 중반 잠시 다시 쓰였고, NASA가 연구용으로 쓴 기체가 1999년 10월 9일 마지막으로 날았다.[4][3]
적의 미사일보다 빨리, 높이 날아 따돌리는 것이 생존 전략이었다. 베트남 전쟁 동안 북베트남이 약 800발의 지대공 미사일을 쐈지만 한 발도 맞히지 못했고,[5] 적의 공격으로 잃은 기체는 없다. 다만 32대 가운데 12대를 사고로 잃었다.[6]
1950년대 미국은 CIA의 U-2 정찰기로 소련을 정찰했다. 그러나 1960년 5월 1일 프랜시스 개리 파워스가 몰던 U-2가 소련 상공에서 지대공 미사일에 맞아 떨어지면서, 격추당하지 않을 만큼 빠르고 높이 나는 새 정찰기가 시급해졌다.[7]
CIA는 1959년 록히드에 OXCART 계약을 줬다. 설계는 U-2를 만든 켈리 존슨의 스컹크 웍스가 맡았고, 티타늄 가공, 윤활유, 제트 엔진, 연료, 항법, 비행 제어, 전자전 장비, 레이더 반사 줄이기, 조종사 생명 유지 장치까지 새로 개발해야 했다.[4] 존슨은 뒤에 "모든 것을 발명해야 했다"고 회고했다.[7] 1인승 A-12는 1962년 4월 첫 비행을 했고,[3] 1965년 11월 12일 실전 배치가 선언됐다. A-12의 유일한 실전 작전인 '블랙 실드'는 1967년 5월부터 1968년 5월까지 오키나와 가데나 기지에서 동남아시아와 북한 상공으로 29번 출격했다.[4]
미 공군은 1962년 12월 '정찰/타격'(reconnaissance/strike)용 기체 6대를 주문했고, 1963년 8월 25대를 더 주문했다. 공군형은 A-12보다 약 1.8m(6피트) 길고 연료를 가득 실었을 때 약 6,800kg(1만 5,000파운드) 무거웠으며, 2인승 조종석과 더 두드러진 동체 옆 모서리(차인), 광학·레이더 영상 장비를 더 갖췄다.[4] A-12는 CIA가 비밀리에, SR-71은 공군이 공개적으로 운용하는 체제가 됐다. 비슷한 능력의 두 기단을 함께 유지할 이유가 없어 A-12는 1968년 퇴역했다.[4]
린든 B. 존슨 대통령은 1964년 2월 29일 요격기형 YF-12A를 일부러 'A-11'이라고 부르며 공개했고, 같은 해 7월 24일 SR-71의 존재를 발표했다.[3] 이 연설에서 대통령이 원래 이름 'RS-71'을 'SR-71'로 잘못 읽었다는 이야기가 널리 퍼졌지만, 실제로는 '전략 정찰'(Strategic Reconnaissance)이라는 이름을 원한 커티스 르메이 공군참모총장 쪽이 연설 원고를 SR-71로 고치게 했고 언론 배포용 원고에만 옛 표기가 남아 있었다는 설명이 있다.[8]
| 기종 | 생산 | 사고 손실 | 설명 |
|---|---|---|---|
| A-12 | 13(훈련형 TA-12 1대 포함) | 5 | CIA용 1인승 정찰기 |
| YF-12A | 3 | 2 | 공군 요격기 시제기. 양산형 F-12B는 만들어지지 않음 |
| M-21 | 2 | 1 | 무인 정찰기 D-21을 등에 싣고 띄우는 모기(母機) |
| SR-71A | 29 | 11 | 공군 2인승 정찰기 주력형 |
| SR-71B | 2 | 1 | 교관석을 높여 단 훈련형 |
| SR-71C | 1 | 0 | YF-12A 시제 1호기 뒷동체와 지상 시험용 앞동체를 이어 만든 훈련형. 추락한 SR-71B를 대신함 |
생산·손실 수는 SR-71 Online 자료,[6] 기종 설명은 NASA 자료를 따랐다.[3] SR-71C는 짜깁기한 기체라 '사생아'(The Bastard)라는 별명이 붙었다.[8]
마하 3으로 오래 날면 공기와의 마찰로 기체 표면이 섭씨 300도(화씨 600도) 넘게 달아오른다. 이 열을 견디기 위해 기체의 약 85%를 티타늄과 스테인리스강 등 특수 합금으로, 나머지 15%를 복합재(주로 석면·실리콘 적층재)로 만들었다.[3][1] 당시 질 좋은 티타늄을 가장 많이 생산하던 나라는 소련이어서, 미국은 제3국과 위장 회사를 거쳐 소련산 티타늄을 들여왔다.[9]
티타늄은 다루기가 까다로웠다. 카드뮴 도금 공구가 닿으면 티타늄이 약해진다는 사실을 알게 된 뒤에는 공구까지 티타늄으로 새로 만들었다. 스컹크 웍스의 벤 리치는 검은 칠이 열을 잘 내보낸다는 점에 착안해 기체를 검게 칠하자고 제안했고, 여기서 '블랙버드'라는 이름이 나왔다.[7] 검은 도료는 높은 고도의 어두운 하늘에서 기체를 덜 눈에 띄게 하는 효과도 있었다.[4]
땅 위에서 차가울 때는 동체 판이 서로 헐겁게 맞물려 있다가 비행 중 열팽창으로 맞춰지도록 설계했다. 이 때문에 지상에서는 연료가 조금씩 샜다.[10]
엔진은 애프터버너가 달린 프랫 앤드 휘트니 J58 축류 터보제트 2기로, 1기당 추력은 3만 2,500파운드(약 145kN)다. 마하 3 순항 때 엔진 자체가 내는 추력은 전체의 20%가 안 되고, 나머지는 엔진 앞 원뿔(스파이크)을 앞뒤로 움직이는 흡입구와 배기 노즐 설계에서 나왔다. 이 속도에서는 흡입구로 들어온 공기 상당량이 엔진을 거치지 않고 애프터버너와 배기 노즐로 바로 들어가 램제트처럼 작동했다.[1]
초기에는 흡입구 충격파 위치를 아날로그 컴퓨터로 제어했는데, 충격파가 흡입구 밖으로 튀어나가는 '언스타트'가 일어나면 한쪽 엔진 추력이 갑자기 떨어져 기체가 심하게 요동쳤다. 1980년부터 비행·흡입구 제어를 디지털 시스템(DAFICS)으로 바꾸면서 이런 현상이 줄었다.[11]
연료는 불이 잘 붙지 않는 전용 연료 JP-7을 썼다. 엔진 시동과 애프터버너 점화에는 공기에 닿으면 저절로 불이 붙는 트리에틸보레인(TEB)을 썼고, 이때 녹색 불꽃이 보였다. 연료는 기체와 조종석, 전자 장비의 열을 식히는 냉각재 구실도 했다. 이륙 때 브레이크와 타이어 부담을 줄이려고 연료를 일부만 싣고 뜬 뒤 공중급유를 받았고, JP-7을 실을 수 있게 고친 전용 급유기 KC-135Q가 따로 운용됐다.[10]
SR-71A 기준이다.
| 항목 | 값 |
|---|---|
| 승무원 | 2명(조종사, 정찰 시스템 담당관)[3] |
| 길이 | 32.73m(107.4피트)[1] |
| 날개폭 | 16.94m(55.6피트)[1] |
| 높이 | 5.63m(18.5피트)[1] |
| 날개 면적 | 약 167m²(1,800제곱피트)[14] |
| 빈 무게 | 약 30,600kg(6만 7,500파운드)[14] |
| 총 이륙 중량 | 약 63,500kg(14만 파운드, 연료 약 36,300kg 포함)[1] |
| 최대 이륙 중량 | 약 78,000kg(17만 2,000파운드)[14] |
| 엔진 | 프랫 앤드 휘트니 J58 애프터버너 터보제트 2기, 기당 3만 2,500파운드(약 145kN)[1] |
| 순항 속도 | 마하 3.2(시속 3,500km 이상)[1] |
| 최고 속도(공식 기록) | 시속 3,529.56km(1976년)[2] |
| 운용 고도 | 2만 1,300~2만 5,900m(7만~8만 5,000피트), 설계상 최대 2만 7,400m(9만 피트)[3] |
| 페리 항속 거리 | 약 5,230km(2,824해리)[14] |
| 주요 재료 | 티타늄 등 합금 약 85%, 복합재 약 15%[3] |
1980년대 미국은 영국에서 출발해 발트 해 공해 상공을 도는 정기 정찰 비행 '발틱 익스프레스'를 했다. 1987년 6월 29일 이 임무 중이던 SR-71(조종사 듀안 놀, 정찰 담당관 톰 벨트리)이 한쪽 엔진 고장으로 약 7,600m(2만 5,000피트)까지 내려오며 스웨덴 영공에 들어갔다. 스웨덴 공군 JA 37 비겐 전투기 두 쌍이 차례로 출격해 사정을 파악한 뒤, 다른 나라 항공기의 위협으로부터 SR-71을 보호하며 영공 밖까지 호위했다. 이 일은 30년 넘게 비밀이었다가 공개됐고, 미 공군은 2018년 11월 28일 스톡홀름에서 스웨덴 조종사 4명에게 항공훈장을 줬다.[16]
1980년대 후반 정찰 위성 성능이 좋아지면서 운용비가 많이 드는 SR-71 사업에 대한 지지가 줄었다. 미 공군은 1989년 11월 블랙버드 운용을 중단했고, 1990년 1월 21일 마지막 기체가 가데나를 떠났으며, 1월 26일 빌 공군기지에서 퇴역식을 했다.[4]
1990년 3월 6일 스미스소니언 박물관에 기증될 기체(61-7972)가 캘리포니아에서 워싱턴 D.C. 덜레스 공항까지 마지막 비행을 하며 기록을 세웠다. 조종사 에드 일딩 중령과 정찰 담당관 J. T. 비다 중령이 탔고, 서해안에서 동해안까지 68분 17초 만에 건넜다. 그전 기록은 1963년 보잉 707의 3시간 38분이었다. 로스앤젤레스~워싱턴 구간 평균 시속 3,465km(2,153.24마일), 세인트루이스~신시내티 구간 시속 3,609km(2,242.48마일), 캔자스시티~워싱턴 구간 시속 3,542km(2,200.94마일)도 미국 항공협회(NAA)가 기록으로 인정했다.[17] 이 기체는 지금 스미스소니언 국립항공우주박물관 별관(스티븐 F. 우드바헤이지 센터)에 전시돼 있다.
중동과 북한 정세가 불안해지자 의회는 1994년 9월 SR-71 3대를 다시 가동할 예산을 배정했고, 2대가 1995~1996년 잠시 작전 가능 상태가 됐다. 그러나 빌 클린턴 대통령이 1997년 10월 추가 예산을 거부했고, 1999년 6월 SR-71 사업은 공식 종료됐다.[4]
NASA는 블랙버드를 가장 오래 쓴 곳이다. 1969년 12월부터 1979년 11월까지 드라이든 비행연구센터에서 공군과 함께 YF-12A 2대와 SR-71A 1대를 연구에 썼는데, SR-71A는 정치적 이유로 'YF-12C'라는 가짜 이름과 A-12의 꼬리 번호를 빌려 달았다.[3]
1990년대에는 SR-71A(NASA 844)와 훈련형 SR-71B(NASA 831)를 빌려 고속·고고도 연구에 썼다. 레이저로 비행 자료를 재는 센서, 자외선 천체 관측, 소닉붐 줄이기 연구, 모토로라 이리듐 위성 통신망 시험(지상 송수신기와 교신하는 대리 위성 역할), 선형 에어로스파이크 로켓 엔진 모형을 등에 얹고 나는 LASRE 실험(1997~1998)이 대표적이다.[1] NASA 844는 1999년 10월 9일 에드워즈 공군기지 에어쇼에서 고도 2만 4,400m(8만 100피트), 마하 3.21로 날았고, 이것이 블랙버드 계열 전체의 마지막 비행이었다.[3]
2026년 9월 NASA 암스트롱 비행연구센터에 전시돼 있던 NASA 844가 사라진 사실이 위성사진으로 확인되고, NASA가 옛 SR-71 기술자들에게 연락했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이 기체를 다시 날게 하려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NASA는 공식 발표를 하지 않았다.[18]
| 날짜 | 기록 | 비고 |
|---|---|---|
| 1974년 9월 1일 | 뉴욕~런던 1시간 54분 56초 | 조종사 제임스 설리번, 정찰 담당관 노엘 위디필드. 영국 판버러 에어쇼에 내렸다.[19] |
| 1976년 7월 27일 | 1,000km 폐쇄 코스 시속 3,367.22km | 조종사 아돌퍼스 블레드소, 빌 공군기지[2] |
| 1976년 7월 28일 | 절대 속도 시속 3,529.56km(15/25km 직선 코스) | 조종사 엘던 W. 조어스[2] |
| 1976년 7월 28일 | 수평 비행 절대 고도 2만 5,929m | 조종사 로버트 C. 헬트[2] |
| 1990년 3월 6일 | 미국 서해안~동해안 68분 17초 등 4개 구간 | 마지막 공군 비행[17] |
CIA는 A-12가 1965년 시험 비행에서 9만 피트 고도에서 시속 2,208마일(약 3,553km)을 기록해 SR-71의 공식 기록보다 빨랐다고 밝혔다. 다만 비공개 시험 기록이라 공식 세계 기록은 SR-71이 갖고 있다.[4]
SR-71 32대 가운데 12대(A형 11대, B형 1대)가 사고로 없어졌다. 적의 공격으로 잃은 기체는 없고, 사고로 숨진 승무원은 1966년의 짐 즈웨이어 1명이다.[6]
| 날짜 | 기체 | 내용 |
|---|---|---|
| 1966년 1월 25일 | 61-7952 | 고속·고고도 시험 중 흡입구 언스타트로 마하 3 넘는 속도에서 공중분해. 조종사 빌 위버는 살았으나 정찰 담당 기술자 짐 즈웨이어가 숨졌다(뉴멕시코주 투컴캐리 인근).[6][13] |
| 1967년 1월 10일 | 61-7950(시제기) | 에드워즈에서 미끄럼 방지 브레이크 시험 중 타이어가 터지고 마그네슘 바퀴에 불이 붙어 전소 |
| 1967년 4월 13일 | 61-7966 | 아음속 고속 실속으로 추락, 승무원 탈출 |
| 1967년 10월 25일 | 61-7965 | 야간 비행 중 관성항법 장치 고장으로 잘못된 자세 정보가 표시돼 추락 |
| 1968년 1월 11일 | 61-7957(SR-71B) | 발전기 2대 고장과 양쪽 엔진 정지로 빌 기지 접근 중 추락 |
| 1968년 10월 10일 | 61-7977 | 이륙 중단 뒤 활주로를 벗어나 화재 |
| 1969년 4월 11일 | 61-7954 | 바퀴·타이어 파손으로 전소. 이후 전 기체의 바퀴를 알루미늄으로, 타이어를 강화형으로 바꿈 |
| 1969년 12월 18일 | 61-7953 | 비행 중 폭발과 고속 실속. 정확한 원인 미상 |
| 1970년 5월 10일 | 61-7969 | 가데나에서 출격한 북베트남 정찰 임무 중 뇌우 난기류로 양쪽 엔진이 꺼져 타이에 추락 |
| 1970년 6월 17일 | 61-7970 | 공중급유 직후 KC-135Q 급유기와 충돌(텍사스주 엘패소 인근). 급유기는 귀환 |
| 1972년 7월 20일 | 61-7978 | 가데나 착륙 중 활주로 이탈 |
| 1989년 4월 21일 | 61-7974 | 가데나 이륙 뒤 왼쪽 엔진 폭발로 남중국해에 추락. 승무원은 현지 어부에게 구조됐다. 블랙버드 계열의 마지막 손실 |
표의 사고 내용은 SR-71 Online 자료를 따랐다.[6]
2013년 11월 항공 전문지 에이비에이션 위크는 스컹크 웍스가 마하 6으로 순항하는 무인 극초음속 정찰·타격기 SR-72를 구상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정찰 위성과 기존 항공기로 메우기 어려운 빠른 정보 수집 공백을 채우려는 구상이다.[20]
- ↑ 1.00 1.01 1.02 1.03 1.04 1.05 1.06 1.07 1.08 1.09 NASA Facts: SR-71 Blackbird (FS-2008-6-030-DFRC), NASA 드라이든 비행연구센터, 2026-10-11 확인.
- ↑ 2.0 2.1 2.2 2.3 2.4 General Aviation World Records: Lockheed SR-71 "Blackbird", 국제항공연맹(FAI), 2010-07-29 보존본.
- ↑ 3.00 3.01 3.02 3.03 3.04 3.05 3.06 3.07 3.08 3.09 3.10 3.11 3.12 3.13 3.14 Blackbird Facts, 피터 W. 멀린 정리, NASA, 2014-03-11 보존본.
- ↑ 4.00 4.01 4.02 4.03 4.04 4.05 4.06 4.07 4.08 4.09 4.10 4.11 4.12 4.13 OXCART vs Blackbird: Do You Know the Difference?, 미국 중앙정보국, 2015-12-08 보존본.
- ↑ 5.0 5.1 Bye Bye U-2: CIA Legend Allen Predicts End Of Manned Reconnaissance, Breaking Defense, 2015-09-22(2017-06-01 보존본).
- ↑ 6.0 6.1 6.2 6.3 6.4 Blackbird Losses, SR-71 Online(피터 멀린 자료), 2024-09-26 보존본.
- ↑ 7.0 7.1 7.2 Creating the Blackbird, 록히드 마틴, 2020-04-01.
- ↑ 8.0 8.1 Peter W. Merlin, "The Truth is Out There... SR-71 Serials and Designations", Air Enthusiast 118호, Key Publishing, 2005년 7월, 4~5쪽.
- ↑ Titanium from Russia Was the Secret Ingredient in the SR-71 Blackbird, 내셔널 인터레스트, 2023-12-03.
- ↑ 10.0 10.1 Richard H. Graham, SR-71 Revealed: The Inside Story, Motorbooks, 1996, 38~47·160쪽.
- ↑ Tony R. Landis, Dennis R. Jenkins, Lockheed Blackbirds, Specialty Press, 2004, 83·97쪽.
- ↑ Paul F. Crickmore, Lockheed Blackbird: Beyond the Secret Missions 개정판, Bloomsbury, 2016, 173쪽.
- ↑ 13.0 13.1 Bill Weaver SR-71 Breakup, Roadrunners Internationale, 2012-02-09 보존본.
- ↑ 14.0 14.1 14.2 14.3 Steve Pace, Lockheed SR-71 Blackbird, Crowood Press, 2004, 110쪽.
- ↑ Paul F. Crickmore, "Lockheed's Blackbirds: A-12, YF-12 and SR-71A", Wings of Fame 8권, Aerospace Publishing, 1997, 59·64쪽.
- ↑ 16.0 16.1 Swedish pilots presented with US Air Medal, 미 공군, 2018-11-29.
- ↑ 17.0 17.1 Spy Plane Sets Speed Record, Then Retires, 뉴욕 타임스(AP), 1990-03-07.
- ↑ Former SR-71 Engineer Talks NASA's Blackbird Revival Program, The War Zone, 2026-10-02.
- ↑ 'It's just black sky up there': 50 years on, the transatlantic flight speed record remains unbroken, 가디언, 2024-09-01.
- ↑ Exclusive: Skunk Works Reveals SR-71 Successor Plan, 에이비에이션 위크, 2013-1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