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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문도 사건(巨文島事件, 1885~1887)은 조선 고종 때 영국이 러시아의 남하를 막는다는 구실로 전라도 남해의 거문도를 2년 가까이 불법 점령한 사건으로, 청의 중재로 러시아가 조선 영토를 차지하지 않겠다고 보장하자 영국군이 물러났다.

러시아는 1860년 연해주를 차지하고 블라디보스토크를 세웠으나 겨울에 얼지 않는 항구가 필요해 남쪽으로 세력을 넓히려 했다. 1884년 조러 수호 통상 조약을 맺은 뒤 러시아 공사 베베르가 조선 조정에 영향력을 넓혔다. 갑신정변 뒤 청의 간섭이 심해지자 조선 조정 일부와 묄렌도르프가 러시아에 기대려는 움직임을 보였는데, 이를 조러 밀약설이라 한다. 한편 영국과 러시아는 아프가니스탄 문제로 세계 곳곳에서 대립하고 있었다.[1]

  • 점령 - 1885년(고종 22) 3월(음력) 영국 동양 함대가 거문도를 점령하고 해밀턴항(Port Hamilton)이라 부르며 포대와 병영을 쌓아 요새로 만들었다. 조선 정부에는 미리 알리지도 않았다.
  • 조선의 항의 - 조선 정부는 엄세영과 묄렌도르프를 거문도에 보내 진상을 파악하고 영국에 항의했으나 무시되었다.
  • 열강의 교섭 - 러시아는 영국이 물러나지 않으면 자신도 조선의 다른 땅을 차지하겠다고 위협했다. 청은 처음에 영국의 점령을 묵인하려 했으나, 이홍장이 중재에 나서 러시아로부터 조선 영토를 점령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 냈다.
  • 철수 - 영국과 러시아의 아프가니스탄 문제가 타협되면서 영국은 거문도를 지킬 이유가 줄었다. 1887년 2월(음력) 영국군이 완전히 물러났다.
  • 자기 영토가 점령되었는데도 조선은 교섭에서 밀려나고 열강 사이의 이해관계로 문제가 결정되어, 조선의 약한 국제적 지위가 드러났다.
  • 중재를 맡은 청은 조선에 대한 종주권을 더 강하게 내세우며 내정 간섭을 강화했다.
  • 한반도를 둘러싼 열강의 대립이 깊어지자 독일 부영사 부들러와 유길준이 조선을 열강이 보장하는 중립국으로 만들자는 한반도 중립화론을 내놓았다.

열강의 이권 침탈·점령 구별하기

편집 원본 편집
사실 나라·사건
러시아 견제를 구실로 거문도를 불법 점령 영국 (거문도 사건, 1885~1887)
압록강 하구의 용암포를 점령하고 조차를 요구 러시아 (용암포 사건, 1903)
의궤 등 외규장각 도서 약탈 프랑스 (병인양요, 1866)
제너럴 셔먼호 사건을 구실로 침입 미국 (신미양요, 1871)
운산 금광 채굴권, 서울의 전차 부설권 획득 미국
절영도 조차를 요구 러시아(1897~1898)
  1. ↑ 거문도사건,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6-10-18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