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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제국대학에서 넘어옴)

경성 제국 대학(京城帝國大學)은 일제가 1924년 예과를 열고 1926년 법문학부와 의학부를 두어 경성(서울)에 세운 관립 대학으로, 일제 강점기 한국에 있던 유일한 대학이다.

1930년 무렵의 경성 제국 대학

1920년대 초 한국인들이 스스로 대학을 세우려는 민립 대학 설립 운동을 벌이자, 조선 총독부는 이를 누르면서 고등 교육 요구를 달래려고 관립 대학 설립을 서둘렀다. 『신편 한국사』는 총독부가 처음 1923년 개교를 계획했으나 일본 의회에 '조선 제국 대학'이라는 이름으로 낸 것이 문제가 되어 이름을 경성 제국 대학으로 바꾸고 1년 늦어졌다고 적는다. 개교일에 이상재는 이 대학을 민립 대학의 '변신'이라고 했다고 전한다.[1]

  • 법령 - 1924년 5월 경성 제국 대학 관제(칙령 제103호)와 학부에 관한 칙령(제104호)이 공포되었다. 공포일을 백과사전은 5월 1일, 국가기록원은 5월 2일로 적는다.[2][3]
  • 예과(1924) - 일본 본토의 고등학교에 해당하는 과정이 없어 2년제 예과를 먼저 열었다. 예과는 1934년부터 3년제가 되었다.[3]
  • 법문학부·의학부(1926) - 1926년 4월 3년제 법문학부와 4년제 의학부를 열었다. 총장은 조선 총독부 정무총감이 맡았다. 1929년 첫 졸업생 68명(일본인 43명, 한국인 25명)이 나왔다.[2]
  • 이공학부 - 과학·기술 교육을 억누르던 방침 때문에 늦게 생겼다. 설치 시기를 『신편 한국사』는 1938년, 국가기록원은 1941년으로 적는다.[1][3]

대학령은 '국가 사상'에 유의한 인격 도야를 목적으로 내세웠는데, 여기서 국가는 일본이었다. 정치·사회 같은 사회 과학 연구는 허용하지 않았다.[1] 한국인 입학생은 식민지 기간 내내 전체의 3분의 1 정도에 머물렀고, 입학시험은 일본어로 치렀으며 지원자의 사상까지 조사했다.[2] 그럼에도 1931년 무렵 한국인 학생들의 비밀 독서회가 반제국주의 운동에 참여하기도 했다. 광복 뒤 경성 대학이 되었다가 1946년 서울 대학교로 개편되었다.[2]

다른 근대 교육 기관과 구별하기

편집 원본 편집
기관 때 성격
육영 공원 1886 정부가 세운 근대식 관립 학교, 미국인 교사가 영어 교육
대성 학교 1908 안창호가 평양에 세운 민족 교육 학교
민립 대학 설립 운동 1920년대 초 한국인 손으로 대학을 세우려 한 모금 운동, 실패
경성 제국 대학 1924(예과)·1926(학부) 총독부가 세운 유일한 대학
  1. ↑ 1.0 1.1 1.2 (1) 민립대학의 설치운동과 경성제국대학의 설립, 『신편 한국사』 45권 신문화 운동Ⅰ, 국사편찬위원회 우리역사넷, 2026-10-19 확인.
  2. ↑ 2.0 2.1 2.2 2.3 경성제국대학,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6-10-19 확인.
  3. ↑ 3.0 3.1 3.2 경성제국대학, 국정 분야 주제별 검색, 국가기록원, 2026-10-19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