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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영 공원(育英公院, 1886~1894)은 정부가 서울에 세운 최초의 근대식 관립 학교로, 미국인 교사를 초빙해 젊은 관리와 양반 자제에게 영어와 신학문을 가르쳤다.

1882년 조미 수호 통상 조약을 맺은 뒤, 1883년 보빙사로 미국에 다녀온 민영익·홍영식·서광범 등은 미국의 교육 제도를 둘러보고 근대 학교 설립을 건의했다. 고종이 이를 받아들였으나 1884년 갑신정변이 일어나 개교가 늦어졌다. 정부가 미국에 요청한 교사 헐버트·길모어·벙커 세 사람이 도착한 뒤인 1886년 9월 문을 열었다.[1]

  • 학생 - 현직 문무 관리 가운데 뽑은 좌원(左院)과 양반 자제 가운데 뽑은 우원(右院)으로 나누었고, 정원은 35명 정도였다.
  • 교육 - 영어를 비롯해 수학·지리·자연 과학·정치 경제 등을 영어로 가르쳤다. 헐버트는 이때 세계 지리 교과서 『사민필지』를 한글로 지었다.
  • 한계 - 상류층 자제만 받아들였고, 학생들의 의욕이 낮았으며 정부 재정도 넉넉하지 못했다.
  • 폐교 - 1894년 재정난으로 문을 닫았고, 영어 교육만 하는 관립 영어 학교로 바뀌었다.

개항기의 근대 학교와 구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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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연도 세운 주체와 특징
원산 학사 1883 덕원·원산 주민이 세운 최초의 근대 사립 학교
동문학 1883 정부가 세운 통역관 양성 기관
배재 학당 1885 미국 선교사 아펜젤러
이화 학당 1886 미국 선교사 스크랜턴, 여성 교육
육영 공원 1886 정부, 미국인 교사, 좌원·우원
한성 사범 학교 1895 교육 입국 조서 뒤 정부가 세운 교원 양성 학교

같은 무렵의 개화 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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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883년 박문국 설치와 『한성순보』 발행
  • 1883년 보빙사 미국 파견
  • 1884년 우정총국 설치
  • 1897년 이후 대한 제국의 광무개혁은 이보다 훨씬 뒤의 일이다.
  1. ↑ 육영공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6-10-18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