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통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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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통치(文化統治, 1919~1930년대 초)는 3.1 운동 뒤 일제가 헌병 경찰 통치를 보통 경찰 통치로 바꾸고 언론·결사를 일부 허용하는 등 유화책을 내세우면서, 실제로는 감시를 늘리고 친일 세력을 길러 민족을 분열시키려 한 식민 통치 방식이다.
| 내세운 정책 | 실상 |
|---|---|
| 문관도 총독에 임명할 수 있게 함 | 광복 때까지 문관 총독은 한 명도 임명되지 않음 |
| 헌병 경찰제를 보통 경찰제로 바꿈 | 경찰 관서·인원·예산이 오히려 크게 늘어남 |
| 한국인의 신문 발행 허가(1920년 조선일보·동아일보 창간) | 검열·기사 삭제·압수·정간을 되풀이함 |
| 집회·결사 일부 허용 | 1925년 치안 유지법으로 사회주의·독립운동을 탄압함 |
| 제2차 조선 교육령(1922)으로 보통학교 6년, 대학 설립 허용 | 학교 수가 적어 취학률이 낮았고, 대학은 관립 경성 제국 대학(1924)만 세움 (→ 민립 대학 설립 운동) |
| 도 평의회·부 협의회·면 협의회 설치 | 의결권 없는 자문 기구로, 친일 인사가 주로 참여함 |
| 조선 태형령 폐지(1920) | 한편으로 친일 단체와 친일 인사를 길러 민족 운동을 분열시킴 |
제한된 활동 공간 속에서 실력 양성 운동(물산 장려 운동, 민립 대학 설립 운동)과 사회주의 사상의 영향을 받은 노동·농민 운동(조선 노농 총동맹), 청년·여성 운동(조선 여성 동우회, 근우회), 형평 운동, 소년 운동이 활발했다. 한편 일부 민족주의자는 일제의 지배를 인정한 채 자치를 주장했다. 이에 맞서 비타협적 민족주의자와 사회주의자가 1927년 신간회를 세웠다. 학생들은 6.10 만세 운동(1926)과 광주 학생 항일 운동(1929)을 일으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