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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립 대학 설립 운동(民立大學設立運動)은 1920년대 초 한국인의 힘으로 고등 교육 기관인 대학을 세우려고 조선 민립 대학 기성회를 중심으로 모금을 벌인 교육 운동이다.

일제의 식민지 교육은 한국인에게 보통 교육과 실업 교육만 허락했고, 한국에는 대학이 하나도 없었다. 3.1 운동 뒤 실력 양성 운동이 일어나면서 민족의 장래가 교육, 특히 고등 교육에 달렸다는 주장이 힘을 얻었다. 1920년 이상재 등이 조선 교육회를 만들어 대학 설립을 추진했고, 1922년 제2차 조선 교육령이 대학 설립의 길을 열어 두자 운동이 본격화되었다.[1]

  • 기성회 결성 - 1922년 이상재·이승훈·윤치호·김성수·송진우 등이 조선 민립 대학 기성 준비회를 만들고, 1923년 3월 서울에서 총회를 열어 조선 민립 대학 기성회를 출범시켰다. 위원장은 이상재였다.
  • 계획 - 1천만 원을 모아 3년에 걸쳐 법과·경제과·문과·이과, 이어 공과·의과·농과를 갖춘 종합 대학을 세우려 했다.
  • 모금 - '한민족 1천만이 한 사람 1원씩'이라는 구호를 내걸고 지방부를 100여 곳에 두었으며, 만주·하와이 동포도 참여했다. 『동아일보』가 운동을 적극 지지했다.

조선 총독부는 강연을 막고 모금을 방해하는 한편, 한국인의 대학 요구를 무마하려고 1924년 경성 제국 대학 예과를 열고 1926년 법문학부·의학부를 두었다. 여기에 가뭄과 수해로 모금도 잘 되지 않아 운동은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광복 때까지 한국에 세워진 대학은 경성 제국 대학 하나뿐이었다. 그래도 이 운동은 교육을 통한 민족 운동의 본보기가 되었다.

1920년대 실력 양성 운동과 구별하기

편집 원본 편집
사실 운동
조선 민립 대학 기성회가 모금 활동 주도 민립 대학 설립 운동
자작회·토산 애용 부인회 참여 물산 장려 운동
백정 차별 철폐 형평 운동
대한매일신보의 지원, 단연으로 나랏빚 갚기 국채 보상 운동(1907)
문맹 퇴치(문자 보급·브나로드) 1920년대 말~1930년대 언론사의 농촌 계몽 운동
  1. ↑ 민립대학설립운동,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6-10-18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