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성 방송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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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 방송국(京城放送局, JODK)은 1927년 2월 16일 서울에서 한국 최초의 정규 라디오 방송을 시작한 방송국으로, 조선 총독부 체신국의 감독과 사전 검열 아래 운영되었으며 광복 뒤 서울 중앙 방송국을 거쳐 KBS의 모체가 되었다.

조선 총독부는 라디오를 식민 통치의 수단으로 보고 1924년 체신국에 무선 실험실을 두어 시험 방송을 시작했다. 2년 남짓한 시험 방송 끝에 1926년 11월 사단 법인 경성 방송국이 설립 허가를 받았고, 1927년 2월 16일 호출 부호 JODK, 출력 1kW, 주파수 690kHz로 첫 본방송을 내보냈다. 일본 제국 안에서는 도쿄·오사카·나고야에 이어 네 번째 방송국이었다. 수입은 청취료가 거의 전부였는데, 라디오 수신기가 매우 비싸서 개국 무렵 수신기는 1,400여 대에 그쳤고 청취자는 주로 일본인과 일부 한국인 부유층이었다.[1][2]
- 단일 방송 - 처음에는 한 채널로 한국어와 일본어를 섞어 내보냈다. 모든 방송은 체신국의 사전 검열을 거쳐야 했다. 1929년부터는 도쿄 방송을 그대로 중계하는 비중이 커져 한국인 청취자의 불만이 쌓였다.
- 이중 방송 - 1932년 사단 법인 조선 방송 협회로 개편한 뒤, 일본어 제1방송과 조선어 제2방송을 나누는 이중 방송을 실시했다. 조선어 방송에서는 국악·방송극·민요 같은 연예 오락, 우리말 강좌와 교양 강연, 스포츠 중계가 편성되어 한국인 청취자가 크게 늘었다.
- 방송망 확대 - 1935년 경성 중앙 방송국으로 이름을 바꾸고 부산을 시작으로 평양·청진·대구·광주 등지에 지방 방송국을 세웠다. 일제 말기 수신기는 약 40만 대에 이르렀다.[2]
- 전시 동원 - 1937년 중일 전쟁 뒤 연예 방송을 줄이고 라디오를 전쟁 선전과 동원의 도구로 썼다. 조선어 방송도 총독부의 엄격한 통제를 받았다. 1945년 8월 15일 일왕의 항복 방송이 이곳을 통해 전국에 전해졌다.[1]
1945년 9월 미군이 방송국을 접수해 미군정청 공보부 아래에 두었고, 이름을 서울 중앙 방송국으로 바꾸었다. 한국이 독자 호출 부호(HL)를 받기 전까지는 일본에 배정된 JO 계열 부호를 썼다.[3] 서울 중앙 방송국은 뒤에 한국 방송 공사(KBS)로 이어졌다.
이중 방송을 시작한 해는 자료마다 다르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1932년 조선 방송 협회로 개편하면서 이중 방송을 실시했다고 적고, 우리역사넷 교과서 용어 해설은 1933년부터 두 채널로 나누어 방송했다고 적는다.
| 매체 | 때 | 내용 |
|---|---|---|
| 『한성순보』 | 1883 | 박문국에서 펴낸 최초의 근대 신문 |
| 『독립신문』 | 1896 | 최초의 민간 신문, 한글·영문판 |
| 경성 방송국 | 1927 | 최초의 라디오 방송(JODK) |
| 텔레비전 방송 | 1956 | HLKZ-TV, 1961년 KBS 텔레비전 개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