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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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시서(京市署)는 고려와 조선 전기에 수도의 시전을 감독하고 물가를 조절하던 관청으로, 1466년(세조 12) 평시서로 이름이 바뀌었다.
고려는 개경의 시전을 살피고 감독하는 관청으로 경시서를 두었다. 『고려사』 백관지에 따르면 목종 때 이미 영(令)이 있었고, 문종 때 관제를 정해 정7품 영 1명과 정8품 승 2명, 서리인 사 3명과 기관 2명을 두었다. 충렬왕 때 영을 권참으로 고치고 승을 3명으로 늘렸으며, 1356년(공민왕 5) 승의 품계를 종8품으로 낮추었다.[1]
- 고려 - 시전 상인을 감독하고 물가를 살폈다. 고려 말에는 물가가 치솟자 경시서가 물건값을 정하게 하는 조치가 논의되기도 했다.
- 조선 전기 - 조선은 건국하면서 고려의 제도를 이어받아 경시서를 두었다. 한양에 시전이 들어서자 물가 조절, 상인 감독, 시전의 세금을 맡았고, 제도가 정비되면서 화폐 유통과 도량형 업무도 보았다.
- 평시서로 개칭(1466) - 세조가 관제를 고칠 때 이름을 평시서(平市署)로 바꾸었다. 『경국대전』에는 종5품 아문으로 올라 있다.[2]
- 조선 후기의 평시서 - 금난전권이 강해진 뒤에는 시전마다 팔 수 있는 물품을 정하고 그 전매권을 보호하는 일을 맡았고, 통공 정책의 실무도 담당했다. 1894년 갑오개혁 때 없어졌다.[3]
- 그러므로 '경시서의 관리'라는 이름은 고려와 조선 전기(1466년 이전)에 맞는 표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