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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인(貢人)은 조선 후기 대동법 시행 뒤 선혜청 등에서 공물 값(공가)을 미리 받아 왕실과 관청에 필요한 물품을 사들이거나 만들어 바친 어용 상인으로, 공물 주인(貢物主人)이라고도 했다.

대동법 이전에는 고을마다 특산물을 공물로 바쳤는데, 서울의 경주인이나 관청 하인들이 공물을 대신 바쳐 주고(방납) 고을 백성에게 그 값을 몇 배씩 받아 내는 폐단이 컸다. 『효종실록』은 1651년 충청도 대동법 결정 기사에서 물품 값이 1필·1두에 지나지 않는데 수십 필·수십 석까지 받아 냈다고 적었다.[1]

대동법이 시행되자 정부는 공물 대신 토지 결수에 따라 쌀·베·돈을 걷고, 이를 공가로 내주어 필요한 물품을 사들이게 했다. 이때 나라가 인정한 조달 상인으로 등장한 사람들이 공인이다. 방납을 하던 상인 일부, 시전 상인, 장인, 땔감을 대던 기인, 고을의 연락 업무를 맡던 경주인 등이 공인이 되었다.[2]

  • 두 유형 - 공가로 시장에서 물건을 사서 바치는 상인적 공인(지계·마계·삼계 공인 등)과, 직접 물건을 만들어 바치는 수공업자적 공인(칠계·수철계 공인 등)이 있었다.[2]
  • 공계 - 같은 관청이나 같은 물품을 맡은 공인들은 돈을 모아 계(공계)를 만들었다. 호조에만 공계가 39종에 이르렀다.
  • 도고 상인으로 성장 - 공인은 많은 물량을 한꺼번에 사들이며 특정 물품을 독점하는 도고로 자라났고, 생산자에게 원료나 돈을 미리 대 주는 선대제를 통해 수공업 생산에도 영향을 미쳤다. 상품 화폐 경제가 발달하는 계기가 되었다.[3]
  • 한계 - 정부가 공가를 시세에 맞게 올려 주지 않아, 공인들은 다음 해 공가를 미리 당겨 쓰거나 1년 치 공가를 미리 팔아 자금을 마련하기도 했다.[3]

조선 후기의 상인과 구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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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인 특징
공인 대동법 이후 관청 물품을 조달한 어용 상인
시전 상인 서울 종로 등에서 관허 점포를 열고 금난전권을 누림 (→ 신해통공)
송상(개성 상인) 인삼 재배·가공과 대외 무역, 전국 송방 운영 (→ 조선 후기의 경제)
경강상인 한강을 무대로 곡물·소금 등 운송과 판매
객주·여각 포구와 장시에서 상품 위탁 판매, 숙박·금융 (→ 조선 후기의 경제)
  1. ↑ 『효종실록』 7권, 효종 2년 8월 24일, 호서의 대동법을 정리하고, 제사에 쓰는 제물에 대해 논의하다, 조선왕조실록, 국사편찬위원회, 2026-10-19 확인.
  2. ↑ 2.0 2.1 공인의 등장과 유형, 『신편 한국사』 33 조선 후기의 경제, 한국사데이터베이스, 국사편찬위원회, 2026-10-19 확인.
  3. ↑ 3.0 3.1 공인,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6-10-19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