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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신 대기근(庚辛大飢饉)은 1670년(현종 11, 경술년)과 1671년(현종 12, 신해년)에 이상 저온과 잇따른 자연재해로 조선 전역에 닥친 대기근과 전염병으로, 조선 시대 최악의 재난 가운데 하나이다.

15세기 말부터 18세기 중엽까지 지구의 기온이 크게 내려간 시기를 소빙기라 한다. 조선도 이 시기에 냉해와 흉년이 잦았고, 현종 즉위년과 2년에도 큰 흉년이 들어 진휼청을 다시 설치했다. 1670년 가을부터는 전례 없는 강추위가 몰아쳤고, 가뭄·홍수·바람 피해·메뚜기 떼(황충) 같은 재해가 한꺼번에 닥쳐 농사를 망쳤다. 굶주림에 지친 사람들 사이로 전염병(여역)이 크게 번졌다.[1]

  • 사망자 - 1671년 한 해 동안 『조선왕조실록』에 보고된 사망자는 88,150명이었으나(『현종개수실록』 권25, 현종 12년 12월), 실제로는 훨씬 많아 백만에 가까웠다는 말이 있었다.[2] 『신편 한국사』는 100만 명 이상의 인명 피해가 났다고 본다.
  • 인구 - 호적에 오른 인구가 1670년 516만여 명에서 1672년 472만여 명으로 줄었다. 다만 이 무렵 호구 수치는 호구를 찾아내는 정도에 따라 크게 달라져 실제 인구로 보기는 어렵다.[1]
  • 국가 제사 - 전염병이 돌자 나라에서는 의료 대책과 함께 원혼을 달래는 여제를 지냈다.[2]
  • 군역을 질 양인이 크게 줄어 군역 제도를 고치자는 양역 변통론이 활발해졌다. 이 논의는 뒷날 영조의 균역법으로 이어졌다(→ 균역법).
  • 숙종 때인 1695~1696년 무렵에도 을병 대기근이 닥쳐 소빙기 재난이 되풀이되었다.[1]

시대별 자연재해·환경 이야기와 구별하기

편집 원본 편집
사실 시대
혜공왕 때 잇따른 재이(천재지변)와 반란 신라 하대 (→ 신라 하대)
원에 바칠 매를 기르는 응방 설치 고려 원 간섭기 (→ 응방)
소빙기 냉해와 경신 대기근 조선 현종(1670~1671)
사람을 해치는 맹수를 잡는 해수 구제 사업, 한반도 호랑이 사냥 일제 강점기
한강 범람으로 경성 일대 침수 1925년 (→ 을축년 대홍수)
  1. ↑ 1.0 1.1 1.2 소빙기 자연재해와 인구 동향, 『신편 한국사』 30, 우리역사넷, 국사편찬위원회, 2026-10-19 확인.
  2. ↑ 2.0 2.1 조선 후기 전몰처의 여제, 『한국문화사』 7, 우리역사넷, 국사편찬위원회, 2026-10-19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