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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하대(新羅 下代, 780~935)는 혜공왕이 살해되고 선덕왕이 즉위한 780년부터 경순왕이 고려에 항복한 935년까지로, 진골 귀족의 왕위 다툼과 지방 호족의 성장, 농민 봉기 속에 신라가 무너져 간 시기이다.

『삼국사기』는 신라사를 상대(박혁거세~진덕 여왕)·중대(태종 무열왕~혜공왕)·하대(선덕왕~경순왕)로 나눈다. 중대에 강했던 왕권은 혜공왕 때 흔들리기 시작했다. 768년 각간 대공이 반란을 일으켜 96각간이 서로 싸웠고, 780년 김지정의 난 와중에 혜공왕이 죽었다. 이를 진압한 김양상이 선덕왕으로 즉위하면서 하대가 열렸다. 이후 약 150년 동안 20명의 왕이 바뀌었다.[1]

왕위 다툼과 개혁 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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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원성왕(785~798) - 김주원을 제치고 즉위했다. 788년 유학 실력으로 관리를 뽑는 독서삼품과를 두었으나 진골의 반대로 효과가 적었다.
  • 헌덕왕(809~826) - 822년 웅천주 도독 김헌창이 아버지 김주원이 왕이 되지 못한 것을 이유로 반란을 일으켰다(김헌창의 난). 825년 아들 김범문도 반란을 일으켰다.
  • 흥덕왕(826~836) - 형 헌덕왕을 이어 정국을 안정시키려 힘썼다. 828년 장보고를 청해진 대사로 삼았고, 같은 해 당에서 돌아온 대렴이 가져온 차 씨를 지리산에 심게 했다. 834년 골품에 따라 옷 색깔·수레·집 크기를 제한하고 사치를 금하는 교서를 내렸다. 무덤은 경주 안강의 흥덕왕릉이다.[2]
  • 흥덕왕 사후 - 균정과 제륭(희강왕)이 왕위를 다투었다. 희강왕·민애왕이 잇따라 죽고, 839년 장보고의 도움을 받은 김우징이 신무왕으로 즉위했다. 846년 장보고는 딸을 왕비로 들이려다 반대에 부딪혀 반란을 일으켰다가 피살되었다.

사회 혼란과 새 세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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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농민 봉기 - 진성 여왕 때 세금 독촉이 심해지자 889년 사벌주(상주)에서 원종·애노의 난이 일어났고, 896년 붉은 바지를 입은 적고적이 경주 근처까지 쳐들어왔다.
  • 호족 - 지방에서 성주·장군이라 일컬으며 군사와 경제력을 가진 세력이 자랐다. 장보고 같은 해상 세력도 나타났다.
  • 6두품 - 골품제의 벽에 막힌 6두품 지식인이 개혁을 주장했다. 최치원은 894년 진성 여왕에게 시무 10여 조를 올렸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진성 여왕 때 위홍·대구화상이 향가집 삼대목을 엮었다.
  • 사상 - 참선을 중시하는 선종이 호족의 후원으로 9산 선문을 이루었고, 도선이 풍수지리설을 퍼뜨려 경주 중심의 생각을 흔들었다.
  • 후삼국 - 900년 견훤이 후백제를, 901년 궁예가 후고구려를 세웠다. 927년 견훤이 경주를 쳐 경애왕을 죽였고, 935년 경순왕이 고려에 항복했다(→ 후삼국 통일).

시기 구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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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때
이차돈의 순교로 불교 공인 527년 법흥왕 (상대)
원광이 걸사표를 지음 608년 진평왕 (상대)
비담·염종의 난 진압 647년 선덕 여왕 (상대)
김흠돌의 난 진압 681년 신문왕 (중대)
각간 대공의 난 768년 혜공왕 (중대 말)
김헌창의 난 822년 헌덕왕 (하대)
청해진 설치, 사치 금지 교서 828·834년 흥덕왕 (하대)
원종·애노의 난 889년 진성 여왕 (하대)
  1. ↑ 신라,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6-10-18 확인.
  2. ↑ 흥덕왕,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6-10-18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