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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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재소(京在所)는 조선 전기에 서울에 있는 고위 관리가 자기 연고지 고을의 유향소를 맡아 그 임원을 임명·감독하고 고을과 중앙 정부 사이를 잇도록 서울에 둔 기구로, 1603년(선조 36) 없어졌다.
- 맡는 고을 - 관품에 따라 맡을 수 있는 고을 수가 달랐다. 2품 이상은 아버지의 내외향·어머니의 내외향·아내의 내외향·할아버지의 외향·증조할아버지의 외향 등 8향, 6품 이상은 6향, 참외는 4향, 벼슬 없는 양반 자제는 2향의 경재소를 맡았다.[1]
- 임원 - 같은 고을 출신 가운데 당상과 좌수 1명, 참상 별감 2명, 참외 별감 2명을 두었다.[2]
- 유향소 장악 - 관할 고을 유향소의 좌수·별감 같은 임원을 임명하고 감독했다. 유향소 임원은 경재소에 올려 결정했으므로 초기 유향소는 경재소의 손안에 있었다.[2]
- 중앙과 고을의 연결 - 고을의 이름을 높이거나 낮추는 일, 고을을 합치는 일에 관여하고 공물 상납을 책임지기도 했다. 그러나 수령의 정사에는 끼어들 수 없었다.[1]
훈신과 척신은 연고지의 경재소를 맡아 사사로운 경제 기반을 넓혔다. 세조 때 우의정 홍윤성은 홍산현 경재소를 맡아 현감을 마음대로 천거하고 자기 노비를 향리 자리에 앉혔다. 이처럼 경재소를 통해 유향소를 장악한 훈구 세력과 이에 맞선 사림의 대립은 사화의 한 원인이 되었다. 임진왜란 뒤 수령의 권한이 강해지고 유향소의 지위가 낮아지자 경재소도 1603년(선조 36) 영구히 없어졌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