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향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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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향소(留鄕所)는 조선 시대 고을의 사족들이 향리의 비리를 살피고 향촌의 풍속을 바로잡으려고 만든 자치 기구로, 좌수·별감을 두었으며 조선 후기에는 향청이라 불렸다.
- 세조 때 혁파 - 유향소가 이번에는 수령과 한편이 되어 백성을 괴롭힌다는 비판을 받았고, 1467년(세조 13) 다시 없어졌다. 함길도 유향품관이 이시애의 난에 가담한 것이 계기였다는 설도 있다.[2]
- 성종 때 복립 - 사림은 향사례·향음주례를 행하고 불효·불목한 자를 다스려 성리학적 향촌 질서를 세우려고 유향소를 다시 세우자고 했다. 성종 때 다시 설치되었으나, 실제로는 훈구 재상들이 경재소를 통해 대부분의 유향소를 장악해 사림의 뜻대로 되지 않았다. 사림의 생원·진사들은 따로 사마소를 만들기도 했다.[1][2]
- 향청 - 1603년 경재소가 없어진 뒤 유향소는 수령을 보좌하는 기구로 성격이 바뀌었고 이름도 향청으로 불렸다. 처음에는 관아와 멀리 떨어져 '이아'라 불렸으나 19세기에는 대개 관아 안에 자리했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