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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종(景宗, 1688~1724, 재위 1720~1724)은 조선의 제20대 왕으로, 숙종과 희빈 장씨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재위 중 후사가 없어 이복동생 연잉군(뒤의 영조)을 왕세제로 책봉했다.

이름은 윤(昀)이다. 태어나자 곧 원자로 정해졌고 3세이던 1690년(숙종 16) 왕세자로 책봉되었다. 이 원자 책봉을 둘러싸고 서인이 물러나고 남인이 집권한 것이 기사환국이다. 1701년 생모 희빈 장씨가 사약을 받은 뒤, 세자를 감싸는 소론과 그에 반대하는 노론의 대립이 깊어졌다. 1717년부터 숙종을 대신해 대리청정을 했고, 1720년 숙종이 세상을 떠나자 33세로 즉위했다.[1]

재위 4년 동안 왕위 계승 문제를 둘러싸고 노론과 소론이 격렬하게 다투었다. 1724년 37세로 세상을 떠났고 왕세제 연잉군이 즉위했다(영조). 경종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두고 독살설이 돌았으며, 이는 1728년 소론 강경파가 일으킨 이인좌의 난의 명분이 되었다.

왕세제 책봉과 신임옥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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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잉군의 왕세제 책봉(1721) - 경종이 병약하고 아들이 없다는 이유로, 정국을 주도하던 노론이 숙종의 아들이자 경종의 이복동생인 연잉군을 왕세제로 세우게 했다.
  • 대리청정 논란 - 노론의 조성복이 세제에게 대리청정을 맡기라고 상소했고, 김창집·이이명·이건명·조태채 등 노론 4대신이 연명으로 이를 밀어붙였다. 소론이 반발하자 경종은 명을 거두었다.
  • 신축옥사(1721) - 소론의 김일경이 대리청정을 주장한 노론을 불충으로 몰아 노론 대신들을 정계에서 몰아냈다.
  • 임인옥사(1722) - 노론 일파가 왕을 시해하려 했다는 목호룡의 고변으로 노론 4대신 등이 사약을 받거나 유배되었다.

두 해에 걸친 이 사건을 신임옥사(신임사화)라 하며, 이후 소론 급진파가 정국을 주도했다. 영조가 즉위한 뒤 노론의 명예가 회복되면서 이 문제는 영조 대 정쟁의 불씨가 되었다.

이웃 왕과 구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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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왕
연잉군을 왕세제로 책봉, 신임옥사 경종
경신·기사·갑술환국, 백두산정계비 건립, 상평통보 법화 숙종
탕평 교서 반포와 탕평비 건립, 균역법, 이인좌의 난 영조
초계문신제, 장용영, 수원 화성 정조
훈련도감 창설(삼수병), 임진왜란 선조
  1. ↑ 경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6-10-18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