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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宣祖, 1552~1608, 재위 1567~1608)는 조선의 제14대 왕으로, 사림이 정치의 중심이 되어 동인과 서인으로 나뉜 붕당 정치가 시작되었고 재위 중 임진왜란을 겪었다.

중종의 손자이자 덕흥대원군의 셋째 아들로, 왕자 시절 하성군에 봉해졌다. 1567년 명종이 후사 없이 세상을 떠나자 즉위했다. 왕의 아들이 아닌 방계에서 왕위를 이은 첫 사례였다. 즉위 초 사화로 피해를 입은 사림을 다시 불러들이고 이황·이이 등을 중용했다. 이황은 『성학십도』를, 이이는 『성학집요』를 지어 선조에게 올렸다.[1]

  • 동서 분당(1575) - 이조 전랑 자리를 둘러싸고 김효원을 따르는 동인과 심의겸을 따르는 서인으로 사림이 갈라졌다. 이이가 양쪽을 조정하려 했으나 효과가 없었다.
  • 정여립 모반 사건(1589) - 동인 정여립이 모반을 꾀했다는 고변으로 많은 동인이 화를 입었다(기축옥사).
  • 건저의 사건(1591) - 세자 책봉(건저) 문제로 서인 정철이 물러났고, 서인 처벌을 두고 동인이 다시 남인과 북인으로 나뉘었다.

임진왜란과 전후 수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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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590년 일본에 보낸 통신사 황윤길과 김성일이 돌아와 서로 엇갈린 보고를 했다.
  •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 도성이 무너지자 평양을 거쳐 의주로 피란하고 명에 원군을 청했다. 세자 광해군에게 분조를 맡겨 의병과 군량을 모으게 했다.
  • 훈련도감(1593) - 류성룡의 건의로 설치해 포수·사수·살수의 삼수병을 길렀다. 지방에는 양반부터 노비까지 묶은 속오군을 편성했다.
  • 1597년 일본이 다시 쳐들어와 정유재란이 일어났고, 1598년 일본군이 물러나며 전쟁이 끝났다.
  • 전쟁 중 국방을 맡은 비변사의 권한이 크게 커졌다.
  • 전쟁 뒤 허준에게 의서 편찬을 맡겨 『동의보감』 작업이 시작되었다(광해군 때 완성).
  • 만년에 얻은 적자 영창대군의 보필을 당부했으나, 1608년 세상을 떠난 뒤 광해군이 즉위했다.

이웃 왕과 구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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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왕
동서 분당, 임진왜란, 훈련도감 창설 선조
을묘왜변(1555)을 계기로 비변사 상설화 명종
대동법 경기도 실시, 『동의보감』 완성, 중립 외교 광해군
이괄의 난, 정묘호란·병자호란 인조
연잉군을 왕세제로 책봉 경종
  1. ↑ 선조,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6-10-18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