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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보위 비상 대책 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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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보위 비상 대책 위원회(國家保衛非常對策委員會, 1980)는 1980년 5월 31일 전국 비상계엄 아래 대통령 소속으로 설치된 기구로, 신군부가 상임 위원회를 통해 국정 전반을 장악하는 통로가 되었다. 줄여서 '국보위'라고 한다.

1979년 12·12 군사 반란으로 군을 장악한 전두환 중심의 신군부는 1980년 5월 17일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넓혔고, 광주의 시위를 무력으로 진압했다(5.18 민주화운동). 직후인 5월 31일 최규하 대통령은 대통령령 제9,897호 「국가 보위 비상 대책 위원회 설치령」을 공포했다. 설치령은 계엄 업무를 지휘·감독할 때 대통령을 보좌하고 국가 보위의 국책 사항을 심의한다는 목적을 내세웠다.[1]

  • 위원회 - 대통령이 의장을 맡고, 국무총리·부총리·주요 부처 장관, 중앙정보부장, 대통령 비서실장, 계엄 사령관, 합동 참모 회의 의장, 각군 참모 총장, 국군 보안 사령관 등이 위원이 되었다.
  • 상임 위원회 - 위원회의 위임을 받아 기획·집행 조정·통제를 맡는 실무 기구로, 위원장과 30명 이내의 위원으로 구성했다. 상임 위원장에는 국군 보안 사령관 겸 중앙정보부장 서리 전두환이 앉았고, 상임 위원 다수가 현역 장성이었다. 위원회 현판식은 6월 5일에 열렸다.[1][2]
  • 사회 정화 - 부정 축재자 처리와 공직자 숙청, 언론인 해직, 정기 간행물 폐간을 단행했다.
  • 삼청 교육대 - 1980년 8월 '불량배 소탕'을 내세운 계엄 포고 제13호에 따라 영장 없이 수만 명을 붙잡아 군부대에서 가혹한 순화 교육을 시켰다.
  • 과외 금지 - 1980년 7월 30일 교육 정상화 방안으로 과외를 금지하고 대학 본고사를 없앴다.

백과사전은 위원회가 4개월여 동안 사회악 일소 조치 등을 강행했다고 적는다.[3]

최규하 대통령이 8월 16일 물러나자 통일 주체 국민 회의는 8월 27일 전두환을 대통령으로 뽑았다. 10월 제8차 개헌으로 새 헌법이 시행되면서 국보위는 국가 보위 입법 회의로 바뀌어 국회 기능을 대신했다(→ 전두환 정부).

신군부의 집권 과정 구별하기

편집 원본 편집
시기 사실
1979.12 12·12 군사 반란
1980.5 비상계엄 전국 확대, 5.18 민주화운동
1980.5.31 국가 보위 비상 대책 위원회 설치
1980.8 삼청 교육대, 통일 주체 국민 회의에서 전두환 대통령 선출
  1. ↑ 1.0 1.1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설치, 관보 제8558호(1980.5.31.), 한국사데이터베이스, 국사편찬위원회, 2026-10-21 확인.
  2. ↑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현판식을 하는 전두환, 오픈아카이브,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2026-10-21 확인.
  3. ↑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6-10-21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