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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정부(全斗煥政府, 1980~1988)는 12·12 군사 반란과 5·18 민주화운동 무력 진압으로 권력을 잡은 신군부의 전두환이 대통령으로 집권한 정부로, 강압 통치와 유화 정책을 함께 펴다가 1987년 6월 민주 항쟁으로 직선제 개헌을 받아들였다.

1979년 10·26 사건 뒤 보안 사령관 전두환을 중심으로 한 신군부는 12월 12일 군사 반란으로 군을 장악했다. 1980년 5월 17일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넓히고 광주의 시위를 무력으로 진압한 뒤(5.18 민주화운동) 국가 보위 비상 대책 위원회(국보위)를 세워 실권을 쥐었다. 최규하 대통령이 물러나자 전두환은 1980년 8월 통일 주체 국민 회의에서 대통령에 뽑혔고, 대통령 선거인단의 간접 선거로 7년 단임 대통령을 뽑는 헌법을 만든 뒤 1981년 다시 대통령이 되어 제5공화국을 열었다.[1] 이 제8차 개정 헌법은 1987년 제9차 개헌 전까지 '현행 헌법'으로 불렸다(→ 대한민국 헌법 개정).

  • 국보위 - 1980년 5월 31일 설치되어 전두환이 상임 위원장을 맡았고, 정치인의 정치 활동을 묶고 공직자를 숙청했다.
  • 삼청 교육대 - 사회 정화를 내세워 수많은 사람을 군부대에 끌고 가 가혹한 훈련을 시켰다.
  • 언론 통폐합 - 신문사·방송사를 강제로 합치고 언론 기본법으로 보도를 통제했다. 문화 공보부가 날마다 '보도 지침'을 내려 '호헌'·'개헌' 같은 표현과 기사의 크기·위치까지 지시했고, 1986년 월간 『말』이 이를 폭로했다.

유화 정책과 사회 변화

편집 원본 편집
  • 프로 스포츠 - 1982년 6개 구단으로 프로 야구가 출범했고 1983년 프로 축구가 뒤를 이었다.
  • 생활 자유화 - 1982년 야간 통행금지를 풀었고, 1983년 중·고등학생의 교복·두발 자율화를 시행했다.
  • 국제 대회 - 1986년 서울 아시안 게임을 열고 1988년 서울 올림픽 개최를 확정했다.
  • 최저 임금제 - 1986년 12월 최저 임금법을 만들었고, 1987년 7월 최저 임금 심의 위원회(지금의 최저 임금 위원회)가 출범해 1988년부터 최저 임금제가 시행되었다.
  • 3저 호황 - 1986년부터 저유가·저금리·저달러에 힘입어 수출이 크게 늘어 국제 수지가 흑자로 돌아섰다.
  • 1983년 KBS의 이산가족 찾기 생방송이 큰 반향을 일으켰다.
  • 1985년 남북 적십자 회담의 합의로 남북 이산가족 고향 방문단과 예술 공연단이 처음으로 서울과 평양을 오갔다. 분단 뒤 처음 이루어진 이산가족 상봉이었다.[2]
  • 1983년 미얀마 아웅산 묘소 폭탄 테러, 1987년 대한항공 858편 폭파 등 북한의 도발도 이어졌다.

1985년 2·12 총선에서는 창당한 지 한 달도 안 된 신한 민주당이 제1 야당이 되어 대통령 직선제 개헌 요구가 거세졌다. 1986년 6월 부천 경찰서 성 고문 사건에 이어 1987년 1월 서울대생 박종철이 고문으로 숨진 사실(박종철 고문 치사 사건)이 드러났는데도 정부는 4월 13일 개헌 논의를 막는 호헌 조치를 발표했다. 이에 맞서 6월 민주 항쟁이 일어났고, 민정당 대표 노태우는 6·29 선언으로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받아들였다. 퇴임 뒤 전두환은 1995년 12·12 군사 반란과 5·18 진압 책임으로 구속되어 1997년 무기 징역이 확정되었다가 그해 말 사면되었다.

다른 정부의 정책과 구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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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정부
6개 구단으로 구성된 프로 야구 출범 전두환 정부
최초의 남북 이산가족 고향 방문단 교환 전두환 정부
제1차 경제 개발 5개년 계획, 7.4 남북 공동 성명 박정희 정부
소련과 수교, 남북한 유엔 동시 가입, 남북 기본 합의서 노태우 정부
금융 실명제, 지방 자치제 전면 실시 김영삼 정부
  1. ↑ 5·18광주민주화운동,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6-10-18 확인.
  2. ↑ 남북이산가족 고향방문,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6-10-18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