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이동
메뉴 여닫기
환경 설정 메뉴 여닫기
개인 메뉴 여닫기
로그인하지 않음
지금 편집한다면 당신의 IP 주소가 공개될 수 있습니다.

국문 연구소(國文硏究所)는 1907년 대한 제국 학부 안에 설치된 한글 연구 기관으로, 주시경·지석영 등이 참여해 국문의 원리와 표기 통일을 연구하고 1909년 「국문 연구 의정안」을 냈다.

갑오개혁 뒤 국문(한글)이 공문서에 쓰이게 되면서 표기법을 통일할 필요가 커졌다. 1905년 지석영이 제안한 「신정 국문」을 정부가 공포했으나 내용을 두고 논란이 일었고, 1906년 이능화가 문자 체계의 통일을 건의하자 1907년 7월 학부에 국문 연구소를 두었다.[1]

  • 위원 - 위원장은 학부 학무국장 윤치오였고, 위원으로 주시경·이능화·어윤적·권보상·현은 등이 임명되었다. 뒤에 지석영·이종일 등이 더해졌다.
  • 연구 - 1907년 9월부터 1909년 12월까지 23차례 회의를 열어, 국문의 연원, 자모의 음가와 순서, 된소리 표기, 받침 등 14개 문제를 토의했다.
  • 「국문 연구 의정안」 - 1909년 12월 결론을 학부 대신에게 올렸다. 그러나 정부가 공포하지 않아 실제로 시행되지는 못했다. 이후 연구 성과는 주시경과 그 제자들의 조선어 연구회·조선어 학회로 이어졌다.

국문 연구 기관·단체와 구별하기

편집 원본 편집
활동 기관·단체
1907년 학부에 설치, 「국문 연구 의정안」 국문 연구소
1921년 조직, 가갸날 제정 조선어 연구회
한글 맞춤법 통일안·표준어 제정, 1942년 탄압 조선어 학회
『진단학보』 발행 진단 학회
순한글 신문 간행 독립신문(1896), 제국신문(1898)
  1. ↑ 국문연구소,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6-10-18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