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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어 학회(朝鮮語學會)는 1931년 조선어 연구회가 이름을 바꾸어 이룬 한글 연구 단체로, 한글 맞춤법 통일안과 표준어를 정하고 조선말 사전을 편찬하다가 1942년 조선어 학회 사건으로 탄압받았다.

뿌리는 1908년 주시경 등이 만든 국어 연구 학회이다. 1921년 주시경의 제자인 임경재·최두선·이승규·장지영 등이 조선어 연구회로 다시 세웠고, 1926년 훈민정음 반포 480주년을 맞아 '가갸날'(뒤의 한글날)을 정했으며 1927년 동인지 『한글』을 펴냈다. 1931년 조선어 학회로 이름을 바꾸었고, 광복 뒤 1949년 한글 학회가 되었다. 학문 연구에 그치지 않고 말과 글을 지켜 민족정신을 이어 가는 일을 목표로 삼았다.[1]

  • 한글 맞춤법 통일안 - 1930년 총회에서 제정을 결의하고 3년 가까이 다듬어 1933년 10월 29일 한글날 기념식에서 발표했다. 오늘날 한국어 맞춤법의 바탕이 되었다.
  • 표준어 사정 - 1936년 한글날에 『사정한 조선어 표준말 모음』을 공표했다.
  • 외래어 표기법 통일안 - 1940년에 정하고 1941년 펴냈다.
  • 사전 편찬 - 1929년 한글날 조선어 사전 편찬회를 꾸려 우리말 큰사전 편찬에 들어갔다. 원고는 광복 뒤 『조선말 큰사전』(뒤의 『큰사전』)으로 나왔다.
  • 문맹 퇴치 - 1931년부터 조선일보·동아일보가 펼친 문자 보급 운동에 교재를 만들고 강사를 보냈다.

조선어 학회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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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2년 함흥 영생 여학교 학생의 일기를 빌미로 일본 경찰이 조선어 학회를 독립운동 단체로 몰았다. 그해 10월 이중화·장지영·최현배 등을 시작으로 1943년 4월까지 33명을 붙잡아 치안 유지법의 내란죄로 엮었다. 사전 편찬 같은 문화 활동도 겉으로만 학술이고 속으로는 독립을 꾀한 결사라는 논리였다. 이윤재·한징은 함흥 감옥에서 옥사했고, 이극로·최현배·이희승·정인승 등이 실형을 받았다. 학회 활동은 광복 때까지 멈추었다.[2] 이 시기 일제는 민족 말살 통치로 학교의 조선어 교육을 없애 가고 있었다.

국어·국학 연구 단체와 구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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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단체
한글 맞춤법 통일안·표준어 제정, 조선말 큰사전 편찬 조선어 학회
가갸날 제정, 잡지 『한글』 간행 조선어 연구회(조선어 학회의 전신)
학부 안에 둔 국문 연구 기관(1907) 국문 연구소
기관지 『진단학보』 발행, 실증 사학 진단 학회
태극 서관 설립, 대성 학교 신민회
순한글 일간 신문 간행(1898) 제국신문
  1. ↑ 한글학회,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6-10-18 확인.
  2. ↑ 조선어학회 사건,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6-10-18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