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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초고왕(近肖古王, ?~375)은 백제의 제13대 왕(재위 346~375)으로, 마한 지역과 가야에 세력을 넓히고 평양성을 공격해 고구려 고국원왕을 전사시키는 등 백제의 최대 판도를 이룬 왕이다.

비류왕의 둘째 아들이다. 즉위 초에 진씨 왕비족과 손잡아 왕권을 강화한 뒤 밖으로 크게 세력을 넓혔다. 이 무렵부터 왕위가 아버지에서 아들로 이어지는 부자 상속이 자리 잡은 것으로 본다. 일본 기록에는 초고왕(肖古王)으로 나온다.[1]

  • 마한 정복: 남쪽으로 마한의 남은 세력을 복속해 영역을 전라도 지역까지 넓힌 것으로 본다.
  • 가야 진출: 낙동강 서쪽의 가야 여러 나라에 영향력을 미쳤다.
  • 패하 싸움: 371년 고구려가 쳐들어오자 왕이 패하(浿河) 가에 군사를 숨겨 두었다가 고구려군이 이르자 급히 쳐서 물리쳤다. 『삼국사기』는 같은 해 겨울의 평양성 공격에 앞선 일로 적었다.
  • 평양성 공격: 371년 태자(뒤의 근구수왕)와 함께 정예군 3만을 이끌고 고구려 평양성을 공격했다. 이 싸움에서 고구려 고국원왕이 화살에 맞아 전사했다. 백제는 황해도 일대의 옛 대방 땅을 차지하여 역사상 가장 넓은 영역을 갖게 되었다.[1]
  • 동진: 372년 동진에 사신을 보내 작호를 받았다.
  • 왜: 왜와 교류하며 학문과 문물을 전했다. 일본 이소노카미 신궁에 전하는 칠지도는 백제가 왜왕에게 보낸 칼로, 이 무렵 두 나라의 관계를 보여 주는 자료로 쓰인다.[2] 아직기·왕인이 왜에 한학을 전했다는 이야기도 이 시기에 걸쳐 전해진다.
  • 요서·산둥 진출설: 중국 사서에 백제가 요서 지역을 차지했다는 기록이 있어 이를 근초고왕 때의 일로 보는 견해가 있으나, 학계의 해석은 엇갈린다.

『삼국사기』는 "백제는 나라를 연 이래 문자로 일을 기록한 적이 없었는데, 이때 박사 고흥을 얻어 비로소 『서기』를 갖게 되었다"고 전한다. 『서기』는 전하지 않는다.[3]

다른 백제 왕과 구별하기

편집 원본 편집
사실 왕
마라난타를 통해 불교 수용(384) 침류왕
웅진 천도(475) 문주왕
22담로에 왕족 파견, 양과 교류 무령왕
사비 천도, 22부 정비, 관산성 전투에서 전사 성왕
익산에 미륵사 창건 무왕
윤충을 보내 신라 대야성 함락(642) 의자왕
  1. ↑ 1.0 1.1 근초고왕,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6-10-18 확인.
  2. ↑ 칠지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6-10-18 확인.
  3. ↑ 서기,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6-10-18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