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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왕(武王, ?~641, 재위 600~641)은 백제의 제30대 왕으로, 신라를 거듭 공격하고 익산에 미륵사를 세워 왕권을 다졌으며, 서동 설화의 주인공으로 알려져 있다.

이름은 장(璋)이고 법왕의 아들, 의자왕의 아버지이다. 성왕이 관산성에서 전사한 뒤 귀족의 힘이 커지고 왕이 자주 바뀌던 혼란을 수습하고 40년 넘게 재위했다. 신라와의 전쟁에서 거둔 승리와 큰 사찰·궁궐 공사를 바탕으로 왕권을 안정시켰다.[1]

『삼국유사』는 마를 캐며 홀어머니와 살던 서동이 노래(서동요)를 퍼뜨려 신라 진평왕의 셋째 딸 선화 공주를 아내로 맞고, 뒤에 백제의 왕이 되었다고 전한다. 이 서동이 무왕이라는 것이다. 선화 공주의 청으로 미륵사를 지었다는 이야기도 함께 실려 있다.

  • 신라 공격 - 즉위 초부터 소백산맥을 넘는 길을 차지하려고 신라를 쳤다. 602년 아막산성 전투에서는 크게 졌으나, 624년 무렵부터 신라 서쪽의 여러 성을 빼앗았다. 이 압박은 뒤에 신라가 당과 손잡는 원인이 되었다.
  • 외교 - 수·당·왜와 사신을 주고받았다. 수가 고구려를 칠 때는 신라의 역습을 걱정해 직접 나서지 않았다. 602년에는 승려 관륵을 왜에 보내 천문·역법·지리서를 전했다.
  • 미륵사 창건 - 익산(금마저)에 세 개의 탑과 세 개의 금당을 갖춘 큰 절 미륵사를 세웠다. 2009년 익산 미륵사지 석탑을 해체·수리하다 나온 사리봉영기에는 639년 사택적덕의 딸인 왕후가 절을 세웠다고 적혀 있다. 이 석탑은 목탑의 짜임을 돌로 옮긴 것으로, 지금 남은 석탑 가운데 가장 크고 오래된 것으로 꼽힌다.
  • 왕흥사·궁남지 - 634년 부여의 왕흥사를 완공하고, 같은 해 궁궐 남쪽에 연못(궁남지)을 팠다.
  • 익산 경영 - 익산 왕궁리 유적을 근거로 익산으로 도읍을 옮기려 했거나 별도(別都)로 삼았다는 견해가 있다.

백제의 다른 왕과 구별하기

편집 원본 편집
업적 왕
익산(금마저)에 미륵사 창건, 서동 설화 무왕
사비 천도, 관산성 전투에서 전사 성왕
백가의 난 평정, 22담로에 왕족 파견 무령왕
신라의 대야성 등 40여 성 함락(642), 황산벌 패배 뒤 멸망 의자왕
  1. ↑ 무왕,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6-10-18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