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자왕
IT 위키
더 많은 작업
의자왕(義慈王, ?~660, 재위 641~660)은 백제의 제31대이자 마지막 왕으로, 즉위 초 신라의 40여 성과 대야성을 빼앗아 신라를 위기에 몰았으나 660년 나당 연합군에 사비성을 잃고 항복해 백제가 멸망했다.
- 40여 성 함락(642) - 642년 7월 왕이 직접 군사를 이끌고 신라의 미후성 등 40여 성을 빼앗았다.[3]
- 대야성 전투(642) - 같은 해 8월 장군 윤충을 보내 낙동강 서쪽의 요충지 대야성(합천)을 함락했다. 성주 김품석과 그 아내(김춘추의 딸)가 죽었고, 이 일은 김춘추가 고구려와 당에 군사를 청하는 계기가 되었다(→ 나당 동맹).
- 고구려와의 화친 - 고구려와 손잡고 신라의 당항성(화성)을 쳐서 신라가 당으로 가는 길을 끊으려 했다. 『삼국사기』 백제본기는 고구려와 화친한 일을 643년 11월에 적었으나, 신라본기는 당항성을 노린 일을 642년 8월의 일로 적어 1년 차이가 난다.[4]
- 655년 - 고구려·말갈과 함께 신라 북쪽의 30여 성을 빼앗았다. 당이 신라와 싸우지 말라고 경고했으나 따르지 않았다.[2]
655년 무렵부터 왕비와 측근이 정치의 앞에 나섰고, 657년에는 서자 41명을 좌평으로 삼았다. 바른말을 하던 성충은 감옥에서 죽으면서 적이 쳐들어오면 육로는 탄현, 물길은 기벌포를 막으라고 남겼고, 귀양 가 있던 흥수도 같은 계책을 냈으나 대신들의 반대로 따르지 않았다.[5]
660년 당의 소정방이 13만 군을 이끌고 기벌포에 상륙하고, 김유신의 신라군 5만이 황산벌에서 계백의 결사대 5천을 무찔렀다. 7월 12일 사비성이 포위되자 의자왕은 이튿날 웅진성으로 피했으나, 사비성이 무너지자 태자와 웅진의 군대를 이끌고 항복했다. 웅진방령 예식(예식진)이 왕을 붙잡아 항복했다는 견해도 있다. 의자왕은 9월 태자 부여효, 왕자 부여태·부여융 등과 백성 1만 2천여 명과 함께 당으로 끌려갔고, 그해 11월 낙양에 이르러 며칠 뒤 병으로 죽었다.[2] 이어 복신·도침·흑치상지가 백제 부흥 운동을 일으켰다.
- ↑ 『삼국사기』 권28 백제본기 의자왕 즉위년(641), 의자왕의 즉위, 한국사데이터베이스, 국사편찬위원회, 2026-10-21 확인.
- ↑ 2.0 2.1 2.2 의자왕,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6-10-21 확인.
- ↑ 『삼국사기』 권28 백제본기 의자왕 2년(642) 7월, 미후성 등을 공격하다, 한국사데이터베이스, 국사편찬위원회, 2026-10-21 확인.
- ↑ 『삼국사기』 권28 백제본기 의자왕 3년(643) 11월, 고구려와 화친을 맺다, 한국사데이터베이스, 국사편찬위원회, 2026-10-21 확인.
- ↑ 삼국통일,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6-10-21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