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보당의 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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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당의 난(金甫當의 亂, 1173)은 고려 명종 3년 동북면병마사 김보당이 동계에서 군사를 일으켜 정중부·이의방 등 무신 집권자를 치고 거제에 쫓겨나 있던 의종을 다시 세우려 한 반란으로, 계사년에 일어나 '계사의 난'이라고도 한다.
- 진압 - 정중부·이의방은 이의민과 박존위를 남쪽으로 보냈다. 경주 사람들이 장순석 무리 수백 명을 죽이고 의종을 객사에 가둔 뒤 이의민을 맞아들였다. 김보당은 붙잡혀 개경에서 처형되었다.
- 의종 시해 - 그해 10월 이의민이 경주 곤원사 북쪽 연못가에서 의종의 등뼈를 꺾어 죽였다.[2] 이 공으로 이의민은 대장군이 되었고 뒤에 최고 권력자가 되었다.
- 문신 학살 - 김보당이 죽기 전에 "문신 가운데 이 모의에 가담하지 않은 자가 없다"고 말한 것이 빌미가 되어, 무신 정변 때 살아남은 문신들까지 많이 죽임을 당했다.
백과사전은 가담자가 김보당의 동생 김지당과 의종 때 내시를 지낸 사람 등 대부분 문신 계열이었다는 점에서, 이 난을 무신 정변에 소극적으로 대처했던 문신 세력이 이의방 등의 독주에 반발해 일으킨 사건으로 본다.[3]
- ↑ 『고려사』 권19 세가19 명종 3년 8월, 김보당이 의종 복위를 도모해 군사를 일으키다, 한국사데이터베이스, 국사편찬위원회, 2026-10-19 확인.
- ↑ 『고려사』 권128 열전41 반역2 이의민, 이의민이 김보당의 반란 때 경주에서 의종을 살해하다, 한국사데이터베이스, 국사편찬위원회, 2026-10-19 확인.
- ↑ 김보당의 난,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6-10-19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