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위총의 난
IT 위키
더 많은 작업
조위총의 난(趙位寵의 亂, 1174~1176)은 고려 명종 4년 서경 유수 조위총이 의종을 죽인 정중부·이의방 등 무신 집권자를 치겠다며 서경에서 군사를 일으켜, 절령 이북 40여 성의 호응을 얻었으나 1176년 진압된 반란이다.
- 절령 싸움(1174) - 조정은 평장사 윤인첨에게 3군을 주어 치게 했으나, 정부군은 절령역에서 폭풍과 폭설 속에 반란군의 기습을 받아 크게 졌다. 반란군은 개경 서쪽까지 밀고 내려왔다.
- 이의방의 반격 - 이의방이 직접 군사를 이끌고 반란군을 물리치고 대동강까지 쫓아갔으나, 추위 때문에 서경을 함락하지 못하고 물러났다. 그해 말 이의방은 정중부의 아들 정균이 보낸 승려 종참에게 살해되었다.
- 금에 원병 요청 - 서경이 포위되어 식량이 바닥나자, 조위총은 금에 사신을 보내 절령 서쪽에서 압록강에 이르는 40여 성을 바칠 테니 군사를 보내 달라고 청했다. 금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사신을 잡아 고려로 돌려보냈다.
- 서경 함락(1176) - 1년 넘게 포위한 끝에 1176년 6월 윤인첨이 통양문을, 후군총관 두경승이 대동문을 쳐서 서경을 함락했고, 조위총은 사로잡혀 목이 베였다.[2]
조위총이 죽은 뒤에도 서경이 함락될 때 달아난 사람들이 1177년 다시 일어나 1년 반 동안 버텼고, 1179년에도 서북면에서 봉기가 일어났다. 조위총의 거병은 무신 정권에 대한 지방 세력의 반발에서 시작했으나, 이후 일반 백성이 이끄는 서북 지방의 저항으로 이어졌다.[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