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사미·효심의 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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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사미·효심의 난(1193~1194)은 고려 명종 때 김사미가 운문(경상북도 청도), 효심이 초전(울산)을 근거지로 일으켜 경상도 일대를 휩쓴 농민 봉기이다.
- 토벌군의 패배 - 8월 대장군 전존걸이 이끄는 토벌군이 여러 번 졌다. 『고려사』 이의민 열전은 함께 출전한 이의민의 아들 이지순이 봉기군과 내통해 옷과 식량을 대 주고 작전 기밀을 흘렸다고 전한다. 전존걸은 이지순을 처벌할 수도 놓아둘 수도 없는 처지에 몰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 토벌군 재편 - 11월 상장군 최인을 남로착적병마사로 삼아 다시 군대를 보냈고, 12월 봉기군 두령 득보가 항복을 청했다.
- 김사미의 최후 - 1194년(명종 24) 2월 김사미가 스스로 관군 진영에 와서 항복했으나 곧바로 목이 베였다.
- 효심의 최후 - 효심의 무리는 밀성(밀양) 싸움에서 7,000여 명이 죽는 큰 타격을 입었고, 1194년 4월 효심이 붙잡혀 봉기가 끝났다.[2]
『고려사』는 경주 출신 이의민이 신라 부흥을 꿈꾸며 봉기군과 내통했다고 적었다. 백과사전은 이미 최고 집정자였던 이의민이 봉기 세력과 결탁하려 했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고, 자신의 출신 지역이 봉기의 근거지였기 때문에 진압에 소극적이었던 것이 내통 의심을 산 것으로 해석한다. 이 일은 1196년 이의민이 최충헌에게 제거되는 계기의 하나가 되었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