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적의 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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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적의 난(1198)은 고려 신종 원년 개경의 사노비 만적이 노비들을 모아 신분 해방과 정권 장악을 꾀하다가 거사 직전에 발각되어 실패한 봉기 계획이다.
- 계획 - 흥국사에 모여 북을 치고 소리치며 대궐로 몰려가면 환관과 관노가 호응할 것이라 했다. 먼저 최충헌 등을 죽이고 각자 주인을 죽인 뒤 노비 문서를 불태워 천인을 없애려 했다.
- 표식 - 누런 종이 수천 장에 '정(丁)' 자를 새겨 동조자의 표식으로 나누어 주었다.
- 연기 - 약속한 날 수백 명밖에 모이지 않자 4일 뒤 보제사에 다시 모이기로 했다.[2]
- 발각 - 율학박사 한충유의 노비 순정이 주인에게 알렸고, 한충유가 최충헌에게 고발했다. 만적 등 100여 명이 붙잡혀 강물에 던져졌고, 나머지 무리는 다 죽일 수 없다 하여 죄를 묻지 않았다. 한충유는 합문지후가 되었고 순정은 백금 80냥을 받고 양인이 되었다.[1]
실패했지만 신분 해방을 내건 천민 봉기에 큰 영향을 주었다. 1200년 진주에서 공사 노비가 봉기했고, 밀성의 관노 50여 명이 운문의 봉기에 합세했으며, 1203년에는 개경의 가노들이 땔감을 한다는 핑계로 모여 전투 연습을 하다 발각되었다.[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