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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삼(金泳三, 1927년 1월 20일~2023년 11월 24일)은 대한민국의 제14대 대통령이다. 본관은 김녕(金寧)이며, 호는 거산(巨山)이다.

  • 1993년 해리먼 민주주의상
  • 1994년 비폭력평화상
  • 1995년 UN협회 세계지도자상
  • 1995년 마틴 루터 킹센터 비폭력평화상
  • 1996년 제1회 루스벨트 국제장애인상
  • 2011년 제3회 대한민국법률대상 입법부문

명예 박사 학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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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삼을 연기한 배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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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삼촌 박부호의 아들 박춘성은 울산현대중공업 전산실에 근무했다. 외사촌 박춘성은 한때 김영삼의 비서이기도 했다.

그는 한때 고교와 군 복무시절 김영삼의 비서진의 일원으로 활동하기도 했으나, '각목전당대회'로 부상을 당한 뒤 정치에 염증을 느끼고 상도동을 나왔다고 한다.

김영삼의 별명은 '깡이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역대 대통령들을 말할 때 우스개 삼아 '이, 윤, 박, 최, 돌, 물, 깡'이라 부른다 한다. 이승만, 윤보선, 박정희, 최규하 대통령까지는 성을 그대로 부르지만 그 다음부터는 별명이다. 즉 '전두환 = 돌', '노태우 = 물', '김영삼 = 깡'이다.

배우 이덕화는 김영삼의 장녀의 초등학교 동창이다. 그래서 친구의 아버지를 도와주기 위해 국회의원에 출마했으나 남궁진과 맞붙어 1,447표의 간발의 차이로 낙선했다.

미래통합당, 자유한국당 등 대한민국 보수계열 대표정당은 두 개의 파벌로 나뉘어져 있는데 하나는 김영삼 파벌이고 다른 하나는 박정희 파벌이다.

유신 시대 당시 그는 "민주 제단에 피를 뿌리고, 아무리 닭의 목을 비틀지라도 새벽이 온다는 사실은 자명합니다."라고 발언했다. 이 발언이 유행해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는 말이 회자화 되었다.

  • 퇴임 후인 1999년 6월 3일은 일본 와세다 대학에서의 강연을 위해 김포공항 귀빈실로 향하는 도중 재미 교포인 박의정이 던진 달걀에 얼굴을 맞았다. 박씨가 당시 지니고 있던 유인물에서 "IMF 구제금융사건을 초래해 나라를 망친 김씨가 할복 자결을 해도 속죄할 길이 없는데도 망발로 통치권에 도전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경제회복을 방해하는 것" 이라 주장하였다. 당시 계란을 투척한 박씨는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이때문에 일본에 늦게 도착한 김 전 대통령은 숙소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지금까지 세상을 살아오면서 독재자에게 몇 번 당했지만 얼굴 전체가 조여드는 고통으로 견디기는 어려웠다"며 "'살인적 페인트' 목표는 나를 봉사로 만들어 죽은 사람과 똑같게 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의 계란투척 순간을 촬영한 한국일보 사진부 고영권 기자는 제31회 한국기자상을 수상했다.
  • 2000년 10월 노르웨이 노벨 평화상 위윈회가 김대중 당시 대통령을 노벨 평화상 수상자로 결정되었을 당시 김영삼은 고려대학교의 초청으로 강연회가 예정되어 있었는데 고려대 학생들의 저지로 문전박대 당하자 "노벨상의 가치가 땅에 떨어졌다"라고 한탄하다 이날 강연이 결국 취소되어 상도동 자택으로 돌아갔다.
  • 2009년 9월 김영삼은 일본 잡지 《애플타운》 2009년 9월호 인터뷰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장례에 대해 "국민장이 아니라 가족장으로도 충분했다"라는 발언을 해 논란을 일으켰다. "노무현의 빈소에 꽃을 던져버리고 나왔다"는 감정적인 발언 역시 문제가 됐다. 한때 통일민주당의 비서관이었으며, 노무현의 측근인 안희정은 김영삼에게 사과를 요구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김영삼 측은 정식 인터뷰가 아니었다고 하면서 "문맥이 거두절미되고 엉뚱한 이야기가 기사로 나간 것 같다"라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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