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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학파(北學派)는 18세기 후반 청의 앞선 문물과 기술을 받아들여 상공업을 일으키고 백성의 삶을 넉넉하게 하자고 주장한 조선 후기 실학자들의 학파이다.

'북학'이라는 말은 박제가의 『북학의』와 유득공의 시구 "북학을 생각하다"에서 나왔다. 상공업 진흥과 기술 혁신을 강조했기 때문에 이용후생 학파 또는 중상학파라고도 한다. 서울의 노론 집안 출신과 서얼 학자들이 중심이었다.[1]

병자호란 뒤 조선의 지배층은 청을 오랑캐로 여기고 북벌을 내세웠으며, 명이 망한 뒤 중화의 전통은 조선에만 남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청이 중원을 차지한 지 100년이 넘도록 번영하자, 청이 지닌 문물은 본래 중화의 것이므로 오랑캐를 통해서라도 배워야 한다는 생각이 나타났다. 사신단을 따라 북경에 다녀온 학자들이 직접 본 청의 발전상이 이 생각을 뒷받침했다.

  • 홍대용 - 1765~1766년 연행. 『의산문답』에서 지전설·무한 우주론을 펴고 중국 중심의 세계관을 비판했다.
  • 박지원 - 1780년 연행. 『열하일기』에서 수레·선박의 이용과 화폐 유통을 강조하고, 「양반전」·「허생전」으로 양반 사회를 풍자했다.
  • 박제가 - 1778년 이후 네 차례 연행. 『북학의』에서 소비가 생산을 자극한다고 하고, 청과의 해상 통상을 주장했다.
  • 이덕무·유득공 - 박제가와 함께 규장각 검서관을 지냈다. 유득공은 『발해고』를 썼다.
  • 유수원 - 앞 시기의 인물로, 『우서』에서 사농공상의 직업 평등과 상공업 진흥을 주장해 북학파의 선구로 꼽힌다.

이들은 1760년대 후반부터 서울 백탑 근처에 모여 살며 교유했기 때문에 백탑파라고도 한다.

  • 청 문물 수용 - 북벌론의 명분보다 청의 선진 기술과 제도를 배우는 것이 나라를 부강하게 한다고 했다.
  • 상공업 진흥 - 수레와 배를 써서 물자를 유통하고, 화폐를 널리 쓰며, 놀고먹는 양반도 상업에 종사하게 하자고 했다.
  • 기술 혁신 - 벽돌·기와·도로·다리 같은 생활 기술과 농기구를 개량하자고 했다.
  • 화이관 비판 - 중국만 세상의 중심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려 했다.

북학 사상은 19세기 최한기의 서양 학문 수용, 박지원의 손자 박규수를 거쳐 개화 사상으로 이어졌다.

중농학파와 구별하기

편집 원본 편집
구분 북학파(중상학파) 중농학파(경세치용 학파)
관심 상공업 진흥, 기술 혁신, 청 문물 수용 토지 제도 개혁, 자영농 육성
인물 유수원, 홍대용, 박지원, 박제가 유형원, 이익, 정약용
대표 주장 수레·선박 이용, 화폐 유통, 소비 촉진 균전론(유형원), 한전론(이익), 여전론(정약용)
저술 『우서』, 『의산문답』, 『열하일기』, 『북학의』 『반계수록』, 『성호사설』, 『목민심서』
  1. ↑ 북학,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6-10-18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