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흠돌의 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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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흠돌의 난(金欽突의 亂)은 681년(신문왕 1) 신문왕의 장인인 소판 김흠돌이 흥원·진공 등 진골 귀족과 반란을 꾀하다 처형된 사건으로, 신문왕이 귀족 세력을 누르고 왕권을 강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 왕비 출궁 - 김흠돌의 딸인 왕비를 궁에서 내보냈다.
- 김군관 자결 - 8월 28일, 반란에 가담하지는 않았으나 알고도 알리지 않았다는 죄로 병부령 이찬 김군관에게 아들과 함께 자결하게 했다.
- 교서 반포 - 신문왕은 반란을 진압한 뒤 교서를 내려 연루자를 끝까지 처벌하겠다고 밝혔다.
- 왕권 강화 - 진골 귀족 세력이 크게 꺾였고, 신문왕은 이를 바탕으로 국학 설립, 9주 5소경, 관료전 지급과 녹읍 폐지 등을 밀고 나갔다.
반란의 배경을 두고는 신문왕 즉위 뒤 밀려난 귀족의 불만으로 보는 견해, 전제 왕권을 세우려는 무열왕계 왕실에 소외된 진골 귀족이 맞선 것으로 보는 견해 등이 있다.
- ↑ 『삼국사기』 권8 신라본기 신문왕 원년 8월, 김흠돌 등이 반란을 꾀하다가 처형당하였다, 한국사데이터베이스, 국사편찬위원회, 2026-10-18 확인.
- ↑ 김흠돌,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6-10-18 확인.